오랜 만에 6개월 된 손녀딸 주니와 함께 휴가를 보냈다. 책을 읽어 주면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빤히 쳐다보고 있고 그림책을 내밀면 자기가 읽어 준다는 듯 무슨 소린지 옹알옹알 거리는 것이 여간 귀엽지 않다. 어릴 적의 교육이 중요하다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같이 살면서 놀아주던 예전의 대가족 제도가 교육에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럴 즈음에 탈레반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이 넘어갔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탈레반의 지배가 걱정되는 이유는 인권 탄압과 교육, 특히 어린이와 여성교육의 말살 때문이다. 그 나라를 도와온 미국의 재정, 노력과 희생이 무척 아쉽다. 정치적인 이유는 접어두고, 몇 가지 사실들은 확실한 것 같다. 사막의 찌는 더위부터 영하의 추운 산악지방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후에서 좁은 미로를 통한 게릴라전이 미군들에게는 힘들고 끝이 없는 무모한 전쟁처럼 보였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단일 민족이 아니고 여러 부족들이 많은 부락을 형성하고 있으니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로 소통이 힘들고 함께 작전을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문제점은 바른 교육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어느 종군 기자의 의견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투철한 국가관이 없고 애국심이 없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드러났다. 교육의 부재는 개인의 발전을 저해하고 국가나 세계에 대한 인식과 바라보는 눈을 가리게 했다. 정부 관리의 부정부패,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결여, 모든 국민을 공동체로 인식하지 않고 개인, 친척, 자신이 속한 한 부족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집단 이기주의 등이 나라 전체에 고통을 주게 되었다. 여러 열강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지리적 위치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유, 평등, 인권의 중요성과 애국심, 그것을 지키기 위한 희생과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가르치는 바른 교육과 희생적인 지도자가 절실했다. 강대국들의 충돌이 상존하는 지역에 사는 국민들에게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반면에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도 국민들이 똘똘 뭉쳐 살아남은 나라도 있다. 현재까지도 4개 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고 대부분의 국토가 산지인 스위스도 여러 민족이 섞여있는 다문화 국가이며, 처음부터 잘사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 나라의 생존과 발전의 근간이 된 부지런한 국민성과 깨끗한 정부의 형성은 다름 아닌 교육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훌륭한 교육가 들 중에서 19세기 이전에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하여 교육한 사람이 스위스의 페스탈로치이다. 고아들의 대부이고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여 당시의 교육관을 개혁한 것으로 유명하다.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페스탈로치가 5세가 되던 해 별세하여 목사였던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풍성한 사랑으로 따뜻하게 컸다. 손자는 그의 할아버지가 같이 산책하면서 교우를 만나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묻고 가난한 교우를 돌보는 것을 보며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혼자서 돌보면서도 고아원에 틈틈이 음식과 옷을 보내고는 하였다. 별세한 그의 아버지도 가난한 사람들을 진료해주었다고 한다. 페스탈로치는 어린 시절 건강이 좋지 못하였지만 할아버지와 산책을 하면서 몸이 건강해지고 자신감도 자랐다. 노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사회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는데 이때 만난 안나와 결혼하였고 처음에는 20여명의 어린이들과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야학을 열었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 다시 정부의 요청으로 고아원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학교를 설립하여 그의 교육관을 실천하였다.
페스탈로치는 가정에서의 인성 교육을 중요시 하였고 “자녀를 보는 즐거움은 사람의 가장 거룩한 즐거움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난하면 감격하기를 잘한다. 마음이 겸허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식구와 이웃과 나라에 충실히 봉사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요새를 지키듯 스스로 건강을 지키자.”라며 전인교육을 하였으며 교과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어린이들이 그의 임종을 지켰다고 한다.
바른 교육은 후손에게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며, 우리 스스로가 평생 해나가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도 의료봉사를 하면 할수록 희생과 사랑이 담긴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효과가 있음을 실감한다. 상대방의 눈높이와 문화에 맞추어 소통을 하는 교육이 이루어질 때 한 개인을 일깨우고 그 사회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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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