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는 겨울이었다.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겨울이라기보다는 우기라고 해야 맞겠지만 아무튼 비가 내리는 겨울 풍경은 어딘가 낯설고도 쓸쓸했다. 아마도 미국 생활이 앞으로 이럴 것이라는 예고편 같은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한국에 있을 때는 미처 예상치 못한 한 가지가 바로 고독의 문제였던 것 같다. 다른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 체험들이 이어졌지만 고독의 문제만큼은 너무 안이하게, 만만히 봤던 것 같다. 미국에 오니 도대체 갈 곳이 없었다. 국립 공원을 간다던지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바베큐를 즐길 곳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친구가 없었다는 뜻이다. 미국은 너나 할 것 없이 외롭게 살아간다. 한국에 있을 때는 딱히 친구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옆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 옆에 또 한 사람 즉 사람 ‘人’ 자의 한 획이 없어지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총체적인 상실을 뜻한다는 것을 미국에 와서야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국에 와서 약 5, 6년간은 수도생활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영혼에 대한, 지독한 고독과 마주했던 것일 수도… 그때 아마 이 세상의 모든(?) 음악에 심취했던 것 같다. 물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들었는지 음악 때문에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동안 쭉 써 온 칼럼들은 대부분 그때 들은 음악들이었다.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아마도 그때의 모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었지만 또 가장 가난한 영혼으로 바라보았던 세상의 진실이었을 것이다. 허름한 외투, 장발을 한 머리, 움푹 들어간 눈은 늑대처럼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아마 그때만큼 인생의 배고픔과 또 인생의 아름다운 감격으로 가득 찬 때도 없었으리라. 그것은 아마도 고독했기에, 또 그 고독을 저주하면서 고독의 비수를 품고 삶의 한 순간 순간을 조각해 나갔던… 나는 그것을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잘 듣지 않았던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 라흐마니노프, 말러의 교향곡… 세드하지만 또 세드했기 때문에 영혼에 청량음료 같았던,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늘 당시의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얼마 전 이민 초기에 알던 어느 친구와 더불어 점심을 함께 하게 되었다. 40여년간을 알아 온 친구인데 한 5, 6년 정도 뜸하더니 연락이 왔다. 그동안 까다로운 암에 걸려 매우 아팠다며 의사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전하는 친구의 얼굴에는 일말의 서글픔이 스쳐갔다. 칼리지에서 강사일을 하며 주말이면 오페라 하우스에서 어셔로 봉사했던 친구는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음악회 표를 주었던 최초의 미국친구였다. 물론 그동안 어셔를 하는 친구 덕분에 입석표를 구입하고도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지만 당시 그 친구 때문에 본 작품이 바로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템페스트’라는 발레였다. ‘템페스트’는 연극과 오페라, 발레 등으로도 많이 만들어졌지만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 등의 교향시로도 우리들에게 친숙하며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템페스트’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발레, 교향곡 등에서 발군을 활약을 보인 차이코프스키는 원래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터라 세익스피어 등의 작품을 주제로 많은 교향시들을 남겼는데 특히 ‘햄릿’, ‘멤프레드’, ‘로미오와 줄리엣’, ‘템페스트’ 등은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걸작 중의 하나로 꼽힌다. 비중에 있어서는 발레 음악, 교향곡 등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러시아의 서정을 담은 교향곡들과는 다르게 교향시에 나타난 차이코프스키의 선율은 더욱 어둡고 비극적인 요소로 점철되어 있는데 친구가 좋아했던 차이코프스키의 ‘템페스트’ 등을 듣고 있자니 폭풍우의 열정 조차도 왠지 덧없고 가을 햇살처럼 처량하게만 느껴졌다. 인생은 혼자 걷는 외로운 길이다. 고통은 종교를 낳게 하고 고독은 예술을 낳게 하는지도 모른다. 파도 위의 발자국처럼… 너와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갈 인생의 그 아련한 비극이여…
차이코프스키는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평생 독신의 삶 속에 피어난 고독의 독버섯으로 오히려 인류의 서정적 감성을 마비시키는 수작들을 수없이 남겼다. ‘비창’을 마지막으로 비극적 삶을 마감했지만 폰 메크 부인과의 오랜 서신 왕래 등 이성을 초월한 예술적 사랑을 남기기도 했는데 시대적으로 앞서갔던 그의 동성애 성향은 결국 폰 메크와의 관계뿐 아니라 그의 운명조차도 난파시키는 비극의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템페스트’는 ‘배신’과 ‘복수’, ‘화해’…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통상 ‘템페스트’ 하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의 제목이 말해주듯 운명적이고 사나운 폭풍우를 상징하고 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템페스트’는 폭풍우의 열정과 비극적인 서성미가 강한 대비를 이루면서 차이코프스키라는 인물을 대변하는 인간적인 고독, 삶의 비극을 사랑했던 차이코프스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꼭 들어볼 만한 명곡이다.
<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