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오래 상담을 받아온 김선생님이 지난 주, 와이프를 치매 요양시설에 보냈다. 상담 과제로 그분이 써온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아내가 진단을 받고 7년 동안 집에서 그녀를 돌보았다. 바로 그 전 결혼기념일에 우린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를 요양시설에 보내지는 말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는 우리를 떼어놓았다. 부드럽고 자상했던 그녀는 폭력적이 되었다. 나를 때리고 상스런 욕을 퍼붓는다. 망상과 편집증세도 심해졌다. 그녀를 더는 돌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다. 젊어서는 나의 연인이었고 평생 가장 가까운 친구였으며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자고 맹세했던 반려자. 그녀가 구급차에 실려 요양원으로 떠났다. 나는 비겁자인가? 아내보다 내가 먼저 눈을 감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한다. 아내가 먼저 떠나는 슬픔을 감당할 수는 없을 테니까.”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서 치매로 어머니를 잃은 30세 딸은 장례식 조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떠났다.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말을 걸지 못한다. 직장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상과 친구들과 나눈 재미난 이야기도, 늘 내편이 되어주던 엄마에게 말하지 못한다.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던 엄마, 씬디! 하고 나를 부르던 다정한 목소리를 한번만 더 들어볼 수 있다면……”
부모, 조부모, 배우자 등 사랑하는 사람이 나이 들면서 기억장애를 거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가슴 아프다. 가벼운 건망증이나 여기가 어디? 같은 인지 혼란이 때로 치매의 초기 증세일 수도 있다. 치매는 증상을 가리키는 말로, 알츠하이머와 겹치는 부분도 있으나 같은 말은 아니다. 뇌졸중이나 뇌 산소 공급 부족, 당뇨 등으로 일어나는 혈관성 치매, 보통 60세 이상에게 발병하는 전두엽 치매, 뇌의 운동기능과 기억회로에 단백질이 쌓이는 노인성치매 등으로 나뉘는데, 어느 종류이든 곁에서 지켜보아야하는 가족들의 괴로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사랑하는 가족을 어느 시점까지 집에서 돌볼 수 있는지, 전문요양시설로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가족들의 갈등도 깊어진다.
9월은 ‘세계 알츠하이머의 달’.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면회하고 아들이 아버지의 침대 머리맡에 남긴 노트가 공개됐다.
“헤어질 때마다 내 맘 가득 죄책감. 아버지 홀로 남겨져 상처가 되셨나요? 주어진 건 고작 한 시간 면회. 당신은 지난 일들을 말씀하시죠. 귀담아 들어도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해요. 이러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실까 두려워요. 당신이 이루어온 업적들로 자신감 넘치던 아버지. 지금의 나를 키워내신 아버지. 제발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마세요. 아이 러브 유, 대디!”
앤소니 합킨스 주연의 ‘더 파더’(The Father)는 치매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그린다. 치매 환자가 쓴 시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이 담겨있다. 다음은 8년째 집에서 치매 남편을 돌보는 한 여성이 알츠하이머 소사이어티에 보내온, 남편의 글이다. “나는 치매 환자, 이름은 케니. 당신(와이프)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아. 그래도 특별한 사람이란 건 알지. 말을 하고 싶어. 그러나 말이 되어서 나오지를 않네. 때론 너무 슬퍼. 때론 두려움이 몰려와. 난 뉴욕에서 일했었는데… 기억은 그뿐. 무얼 했었는지 떠오르지 않아. 먹으려 해도 삼킬 수가 없네. 아이스크림이라면 아직 맛을 기억해. 침을 흘려서 미안, 주변을 어지럽히고 흘려서 미안. 이것이 증세란 걸 알아줘. 기저귀를 차게 되어서 미안. 거추장스런 옷을 입히지 말아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네. 하지만 난 아직 인간이야, 그렇지?”
한편, 미국 알츠하이머 협회(www.alz.org)는 미 전역에 지부를 두고 환자 활동 지원, 환자를 돌보는 도우미나 가족들에게 정신적, 물리적 지원을 제공한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네트웍이 구성되어 누구든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한국인 모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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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