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자들이 생각하는 성추행은

2021-08-26 (목) 김지나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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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모가 결국 뉴욕주지사를 사퇴했다. 사퇴는 했지만, 자신의 성추행에 대한 사실은 절대 부인하는 입장에서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었다. 사퇴하는 날에는 친딸을 등에 업고 마치 내 딸을 걸고 성추행은커녕 당신들을 사랑하는 차원이었다는 것으로 무언을 가장해 자신을 고발한 여성들을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 손에는 여유있게 던킨도넛 커피를 들고...

문제는 그가 모든 여성에게 했던 행위들이 그저 사적으로 친한 관계에서 농담으로 혹은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나 행동들이었다며 반성의 의지가 전혀 없고 오히려 뉴욕 사람들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말을 전하며 떠났다.

몇 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자살로 막을 내린 뉴욕의 제프리 엡스타인은 돈을 미끼로 미성년자를 집으로 불러들여 성추행은 물론이고 성매매뿐 아니라 협박과 폭력 등 여러 가지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클린턴이나 트럼프, 그리고 영국의 앤드류 왕자 같은 정재계의 높은 지위를 이용한 친분을 과시하며 돈과 권력을 거머쥐었다. 제프리는 여성들의 고발로 기소되었다가 2019년 맨해튼의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망했다.


한국 상황도 만만치는 않았다. 한국 연예계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정치, 문화, 체육 할 것 없이 봇물 터지듯 너도나도 00에게 당했다는 폭로가 줄을 이었고 특히 작년에 박원순 시장의 자살로 불거진 성추행 사건의 전말이 고스란히 나왔다.

지구의 반대편에선 탈레반이 승전보를 울리며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지금, 현재 가장 두려운 일은 바로 여성들이 그 전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한다. 12세부터 45세까지의 여자들은 정부의 소속으로 기계나 물건으로 간주하듯 정부가 지정한 군인에게 귀속된다고 하니 이런 21세기를 역행하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성범죄 또한 마찬가지다.

성범죄는 피해자의 입에서만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제프리를 고발하고 박원순 시장을 고발한 그녀들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왜 몇년 아니 몇십년이 흐른 뒤에 성추행을 당했다며 미투에 동참하는 걸까? 제프리가 감옥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기소한 수많은 피해 여성들은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고 아직 법적인 절차도 끝나지 않았으며 아직 그를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나에게 했던 행동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용서를 하는 몫이 법적인 처벌이 아닌 내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전도연이 주연했던 영화 ‘밀양’에서 아들을 죽인 살인자가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았다는 말에 “나는 용서하지 않았는데 용서를 받았단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겼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인 자신이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라야 진심이 통한다. 그래야 피해자는 과거의 치욕스러운 기억을 치유할 수 있고 그동안 받았던 억압된 분노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해자는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성적인 피해인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그런 행동이 자신에게 다가온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행동이라 말하고 감히 성추행이라 말한다. 그러한 일들은 증거가 거의 있을 수 없고 그저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이고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구에게는 씻을 수 없는 수치로 각인되어 버린다. 결국, 그러한 사소한 행동들을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강한 법적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잠깐의 성욕과 순간에 스치는 접촉도 서로 합의하지 않은 행동은 한 인간으로 수치심을 느낄 수 있고 이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처럼 절대적인 정신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으면 이제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한다.

쿠오모나 클린턴 그리고 앤드류 왕자 같은 높으신 분들이 20년이 흘렀지만 그들의 행동을 고발한 여성들에게 솔선수범으로 해줄 게 있다. 다름 아닌 자신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시인하는 일이다. 기억하라. 당신이 한순간의 재미로 한 행동이 어떤 누군가의 삶이 영원히 파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김지나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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