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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타계 12년, 그리운 리더십

2021-08-20 (금)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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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한지 18일로 12주년을 맞았다.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판의 저질 소동들 때문일까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김대중(DJ)은 타고난 정치인이었다. 불굴의 민주신념과 투쟁정신 또한 총명 민첩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끌었다.

박정희 정권 이래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30년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민주정치의 토대를 닦았고 그 뒤를 이은 DJ가 민주주의를 더욱 정착시켰다.


역사가들은 흔히 DJ를 16세기 이탈리아의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인용하여 비교하지만 거기에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군주론 가운데 흔히 회자되는 ‘군주가 국민의 사랑을 받으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라든가 ‘여우도 되고 사자도 되어야 한다’라는 논리가 DJ에게 부합하는 주장은 아닌 것 같다.

DJ는 흙수저 출신으로 난관이 닥칠 때마다 맨몸으로 부딪쳐 극복하는 삶을 이어갔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그렇게도 자기를 탄압했던 세력에게 주저 없이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DJ를 28년간 옥고를 치르고 나와 백인정부와 화해한 아프리카 최초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와 비교하는 것이 결코 무리가 아니다. DJ는 박정희의 최측근이던 박태준과 2인자 김종필과 손을 잡았고 최초 비서실장으로 김중권(경북 울진, 민정당 의원)을 임명했다.

5.18 군사법정에서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하는 관용을 베풀기도 했다. 박근혜가 추진하던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700억원을 지원하여 감동을 주기도 했다. 과감히 국민통합정치를 실천했던 것이다.

DJ가 국가부도 위기(IMF)에서 나라 경제를 구해낸 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DJ는 통일이념으로 ‘햇볕 정책’을 내걸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국인 최초로 영광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일본을 공식방문, 의회연설에서 패전 일본의 자유 민주주의 선택과 경제 부흥을 평가하면서 “이제라도 일본이 피해 받은 나라에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면 도덕적으로 존경받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열변을 토해 일본 의원 전원이 열띤 기립박수를 보낸 기록도 있다. 이후 일본의 왕 히로히토가 “‘통석의 념’을 금할 수 없다”라는 사과 성명을 발표하게도 했다. 그때부터 한일 양국은 경제 분야와 함께 문화, 예술 교류가 대폭 확대되기 시작했다.

세계 학자들의 국가 지도자 덕목을 논하자면 ‘지성·주도성·외향성·열중성·공평성·동정심·자신감·정직성·유머감각’ 등 인격성 특성을 꼽는다. 대통령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1. 비전 제시 2. 설득 3. 순수성 4. 열정 5. 판단력 등을 평가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DJ가 여기 항목들 가운데 몇 개가 해당되고 안 되고는 각자의 주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중국 후한 삼국지의 유비, 조조를 놓고 DJ의 스타일을 비교해본다면 두터운 인품의 유비보다는 경세가였던 조조의 스타일과 맞을 것 같다.


그러나 DJ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전 국민의 여망이던 YS와의 단일화 실패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의 분열은 노태우를 당선시켜 군사정권 5년 연장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끝내 두 사람은 단일화 실패에 대한 책임도 사과도 없었다.

또한 4억5,000만 달러 대북 불법송금 사건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이 사건으로 후임 노무현 정부로부터 수사받는 도중 현대건설 정몽헌 회장이 투신자살 하고 비서실장이던 박지원(현 국정원장)이 실형을 언도받기도 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아무튼 DJ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총명한 치세의 달인이었음에 틀림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남북관계, 대일외교 등이 극한 상황에 놓여있고 국내 경제가 호황이라고는 하지만 빈부격차의 심화 그리고 부동산 주택문제가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대선 출마 후보들 가운데 국가의 절박한 과제들을 유능하게 해결해 갈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DJ 롤모델이 한층 더 아쉬워지는 이유다. YS, DJ 당시에는 정치가 있었다. 지금은 정치가 없고 분열, 격돌의 이전투구만 보인다. YS, DJ의 시절이 그립다.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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