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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아파트

2021-08-17 (화) 이상대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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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이국적인 이미지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윤수일, 그의 외모만큼이나 신선한 새 주거 유형의 아파트로 80년대 초반의 감성을 노래했던 대중가요가 있었다. 어두컴컴하고 습한 실내 마루에서 주로 뛰어놀다, 어느 날 잠실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70년대 후반이었으니, 당시의 그곳은 신천지였다. 내가 살던 2단지 아파트 앞 주차장과 도로는 초등학생이 거침없이 뛰어놀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어둠이 내릴 때까지 혼신을 다하여 뛰어놀다 벗어놓았던 외투를 다음날 아침에 발견하기 일쑤였다. 봄이 오면 잔디밭에서 풀꽃반지를 만들기도 하고, 향긋한 내음과 바람에 온몸을 맡기며 뒹굴었다.

현 롯데월드 앞의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그곳 아이들은 모두 아파트에 살았다. 학교는 주로 같은 단지에서 아이들을 배정했지만 옆 단지에서 부분을 구성하기도 했다. 내가 다닌 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대형 평수의 고층 아파트에 살았지만, 나처럼 소형 평수의 저층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소수 있었다. 5단지 아이들은 해외에서 사 온 귀한 장난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 집에는 항상 볼 것 놀 것들이 많았다. 그곳 아이들은 친구 집에 갈 때나, 생일 파티를 해도 주로 같은 단지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곤 하였다. 초대받지 못했다는 것은 내게 심어진 최초의 계급의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뛰어노는 것이 가장 좋았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이 권위와 지배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임을 선언하고, 평생 오로지 인간과 건축만을 위해 싸웠다. 그는 1920년대 초 당시 전쟁 후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현대 도시’를 계획하고 곧이어 파리 도심 재생의 ‘부아쟁 계획’을 발표하였다. 직각의 도로 격자와 공원 같은 녹지 위에 십자형의 60층 고층건물들을 배치하는 계획안으로 당시 파리의 시공간적 맥락에는 적합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열악한 주택 상황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이후 한국에서 아파트나 신도시 계획의 원형이 되었다.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는 1954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착수된 대규모 공공주택단지 프로젝트이다. 세인트루이스 도시 성장에 맞물려 빈민가를 말끔히 밀어내고 11개층 33개동 2,870세대 아파트를지었다. 이 주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혹자는 본인의 가장 행복했던 삶이 이 아파트에서의 생활이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완공후 빈곤층 유입, 공실화, 범죄, 반달리즘, 인종분리현상 등의 문제가 발생해 급격한 슬럼화가 진행되었다. 결국 이러한 문제로 세인트루이스 시당국은 70년대 중반 프루이트 아이고 단지를 폭파해 철거하였다. 프루이트 아이고는 공공정책에 의한 도시 재건축 실패의 상징이자 근대 집합주거의 실패 전형이 되었다.

한국의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 비율이 1985년에 13.5%이던 것이, 2005년에는 52.7%로서 과반수를 넘었다. 강남 아파트는 재력과 신분의 상징에서 욕망의 정점이 되었고, 청년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꿈의 신기루이다. ‘영끌’이란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 머리를 갸우뚱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으다’를 줄여 부르는 신조어로 낯선 단어였다. 최근 부동산 광풍이나 경제상황 악화 후에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라는 자산 관련 용어로 사용된다.

아파트를 소유하지 못했다고 상실감을 호소하는 중년이 있다. 그는 심지어 가족에게서 “쥐뿔도 없다”라는 표현을 듣게 되었다. 가치판단의 기준이 성취의 숫자와 스펙으로 결정되는 시대에 가족의 평가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 모순에 저항하여 인간성을 세우려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유형이 모순되게도 한국에서는 사회의 계층 분화와 자본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름답던 우리 주거의 원형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상대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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