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회사 입사 후 몇 년 동안 담당했던 교육 부서에서 교육 프로그램 운영 외에 꽤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업무는 재미있게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콘텐츠 제작이었다. 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깨트리기 위해 모든 참석자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친목을 다지고, 강사 또한 대화에 물꼬를 트게 하는 용도로 많이 쓰이던 콘텐츠였다.
그 당시 나는 아침마다 강의 준비를 마치고 일찍 교육장에 들어와 시작을 기다리는 참석자들의 표정을 슬그머니 살펴보곤 했었는데, 그것은 마치 안개가 가득 낀 산길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과 비슷했다.
적게는 20명, 많게는 80명이 족히 넘는 성인들이 알 수 없는 표정과 사연을 품고 정적 속에 앉아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8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슬라이드를 넘기며 그들 전부를 설득시키고 한 단계 성장시켜 돌려보내야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었다.
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일단 얼어있는 교육생들의 표정부터 무장 해제시킬 무엇인가가 간절하게 필요했다. 직역하자면 얼음 깨기 활동인데, 예를 들자면 “본인이 살면서 겪은 가장 믿을 수 없는 일 2가지를 처음 보는 2명에게 자세하게 들려주세요”, “나라는 사람을 종이 한 장과 색연필 한 자루로 5분 안에 표현해보세요”, “3분 안에 나와 공통점을 가진 3명을 찾아 내세요” 등, 나이와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짧고 단순한 활동이었다.
우리 팀은 주기적으로 이 활동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왔는데, 결과적으로 사람은 사회적 위치나 나이와 관계없이 나만의 특별함을 인정받거나 타인으로부터 공감 받는 것에 크게 감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꿈과 경험담을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어떤 이는 소방관이 꿈이라고 했고(수년 뒤 그는 정말로 소방관이 되었다!), 어떤 이는 젊었을 적 그 유명한 인디애너 존스 영화에 출연했다며 출연진 속 본인의 이름을 보여주었다.
공통점이 너무 많아 교육 이후에 더 소중한 인연을 쌓은 사람들의 소식도 왕왕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이 글을 읽고 있을 이들과 함께 얼음을 깨는 상상을 한다. 어딘가에서 나와 함께 공감하고 있을 독자들의 멋진 꿈과 삶 또한 내가 들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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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 프리랜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