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못 잤으니 오늘은 자야할 텐데. 이런 생각이 잠을 쫓는다는 걸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뒤척인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인데 어제 못 잤다는 생각에 마음이 묶여 오늘마저 허비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한다. 생각이 문제다. 생각만 떨쳐버리면 잠은 오게 마련인데. 깊은 잠 못 들고 자주 깨는 노루잠이라도 잘 수만 있다면.
그때는 어찌 그리 잠이 쏟아지던지. 생각의 기차는 아버지가 입원해 계시던 병실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이민 온 지 석 달 만에 아버지 병세를 알리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말기 암이라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눈을 떠보니 어느새 내가 아버지 곁으로 날아가 있었다.
그럴 리 없다며 실낱 같은 빛을 붙들고 있던 가족에게, 이래도 못 믿겠냐는 듯 흑백사진이 보여주는 검사결과는 가녀린 희망의 끈마저 모질게 잘라버렸다. 그날부터 아버지와 함께하는 병실 생활이 시작되었다. 표정을 감추고 속고 속이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쌓여갔다. 헛된 희망이 때로 돌이킬 수 없는 잔인한 독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아버지 가슴에 진실이라는 칼끝을 들이댈 수는 없었다. 내게 어떤 아버지였는데...
하루에 한 번 마치 무슨 의례인 양 나는 아버지 휠체어를 밀고 병원 12층에 있는 식당에 올라갔다. 우리는 커피와 차를 앞에 놓고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그저 묵묵히 앉아 있다 내려오곤 했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셨을까. 그리고 나는 왜 어떤 말을 해서라도 그 무거운 정적을 깨지 못했을까. 어쩌면 겁먹은 나의 목소리를 들킬까 두려웠으리라. 불안한 내 눈빛을 감출 자신이 없었으리라.
밤에 당직 간호사가 다녀가고 나면 그때부터 잠이 몰려왔다. 종일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잔심부름 한 것밖에 없는데 몸을 가누기 어려울만치 고단하고 졸렸다. 그러다가 아버지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면 잠이 안 든 척 목소리를 흠흠거리며 곁에 다가가곤 했다. 깨어있어야 할 때는 그리도 집요하게 찾아오던 잠이, 자야 할 때는 어디로 도망가 숨는지. 잠과 술래잡기 하던 두 달 반의 병실 생활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아버지는 오랜 잠을 주무시려는듯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건너가셨다.
생각의 기차는 나를 좀 더 멀리까지 태우고 가더니 서른 무렵의 역에 내려놓는다. 그때도 나는 늘 잠이 부족했다.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잠들었다가 눈 뜨면 아침이 와 있는, 그런 행복을 꿈꾸던 시절이었다. 시외버스로 장거리 통근하며 녹초가 되어 퇴근해도, 하루종일 눈에 아른거리던 아기만 품에 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직장에서 겪는 각지고 모난 것들이 집에만 들어서면 동그랗고 부드럽게 바뀌는 마술의 시간이었다. 잠시도 품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아 아기를 업은 채 저녁상을 차리며 아이가 알아듣지도 못할 엄마의 하루를 이야기하곤 했다.
아기를 재울 때쯤이면 내 체력도 바닥이 났고 젖병을 물리고 앉아 있다가 꾸벅거리고 졸기 일쑤였다. 졸다가 젖병을 놓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미안한 표정으로 웃으면 아기는 영문도 모르고 제 엄마를 따라 방싯거렸다. 매일밤 아기를 재울 때면 찾아오는 잠은 도깨비바늘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지금처럼 애타게 부를 때 오면 귀한 대접을 받을 텐데. 인생에서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지.
바깥은 이미 희붐한 새벽인데 기차는 지칠 줄 모르고 달리더니 싱그러운 향내가 진동하는 여고시절 역에 멈춘다. 꽃밭에 무리지어 핀 꽃망울이 내뿜는 향기다. 앞으로 어떤 꽃을 피울지 모르는 꽃봉오리들이 저마다 다른 색 다른 모양으로 바람에 살랑거린다. 나도 저들 중의 하나였겠지.
한창 아름다운 꽃망울들은 자기가 무슨 색 꽃인지도 모르고 입시공부라는 흑백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잠을 세 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네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삼당사락’이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이틀 밤을 새워도 까딱없는 나이, 2인분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나이, 뭘 해도 겁 없던 나이였다. 그래도 잠은 이길 수 없는 무서운 상대였다. 소설책을 읽을 때만큼은 잠과 사이가 좋았는지 밤 새워 읽어도 졸립지 않았다. 만일 그때 내가 잠과 싸워 이겨서 그 시간만큼 공부를 더 했더라면 더 예쁜 꽃을 피웠을까.
친구들은 잠을 쫓으려고 커피를 마신다느니 잠 안 오는 약을 먹는다느니 하며, 요즘 다이어트 비법을 공유하듯 속닥거렸다. 하지만 내게는 커피나 잠 안 오는 약 같은 건 너무 멀리 있어 차라리 잘 거 자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공부만 하면 될 거 아니냐는 허약한 오기가 발동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마치 쪽잠을 잔 것처럼 몸이 가뿐하진 않았던 걸 보면 마음은 편치 않았던 것 같다.
멀리서 기적소리가 환청처럼 아슴푸레 들린다. 더는 데리고갈 역도 없는지 생각의 기차가 마침내 꼬리를 보인다. 잠이 이불 속을 파고 든다. 진작에 올 것이지, 얄밉지만 반갑다. 필요할 땐 안 보이고 필요 없으면 나타나는 세상일을 닮았는가 보다. 훤하게 동이 터서 일어나야 할 때쯤에는 그악스럽게 달라붙어 떠나려하지 않겠지. 자몽한 하루를 견딜 일이 아득하다. 쫓아낼 때는 다가오고 붙들면 도망치는 잠 앞에 나는 여전히 약자다. 늦었지만 노루잠 꼬리라도 잡을 수 있으니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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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