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드보르자크(Antonín Dvorak)는 기차를 좋아했다고 한다. 기차가 도착하는 해질녘이면 늘 기차역에서 서성대는 드보르자크를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순진한 어린애 같은 작곡가는 뉴욕 국립음악원 초청으로 미국에 갔을 때에도 늘 기차를 보러 가야한다며 수업시간을 빼먹기 일쑤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소품 ‘유모레스크’가 다름 아닌 레일 위를 구르는 기차 바퀴 소리에서 영감받았다고 하니 위대한 것이 얼마난 단순한 것에서 탄생하는 것인가를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드보르자크는 미국에서 4년을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지만 그때 체코인들이 몰려 살던 아이오와주의 스필빌 등을 찾아 향수를 달래며 ‘신세계 교향곡’, 현악 4중주 ‘아메리카’ 등의 선율을 영감받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드보르작의 선율은 누구에게나 고향의 품속 같은 아늑한 감상으로 빠져들게 만들곤 하는데 기차가 멈춘 그곳에는… 늘 외갓집 산골마을이 떠오르곤 한다.
외갓집 가는 마을은 큰 산을 하나 넘어야 했는데 아마도 산을 등지고 포근히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이 늘 별세계 같은 느낌을 안겨주곤 했는지도 모른다. 큰 산을 등에 업고 길게 펼쳐지는 그늘 때문에 저녁이 일찍 찾아오는 그곳은 약 50여 채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집집마다 외양간과 돼지 우리…닭들이 모이를 먹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초가마을이라면 서울에서도 강만 하나 건너면 당시로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아마도 그곳이 문명과 절연된, 꽤 깊은 산속이었기에 더욱 어떤 원시적인 포근함을 느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현대 문명 속에서는 가볼 수 없기에…말그대로 ‘꿈 속의 고향’으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소, 돼지, 닭 등을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왜 사람들은 문명에 그처럼 애달프게 매달리려 하는 것일까? 왜 유럽 여행은 그처럼 간절히 동경하면서도 자연과 더불어 삶을 살았던, 인디언들의 숨결이 살아있는…우리 지척에 있는…미 서부대륙의 그 원시적인 풍요로움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일까?
드보르자크는 ‘신세계 교향곡’의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앞서 9개의 교향곡을 남긴 교향곡 작곡가로서도 유명하다. 드보르자크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미국을 방문했던 시기로부터 시작하여 ‘신세계 교향곡’ 등을 남긴 ‘아메리카의 드보르자크’…그리고 그가 미국을 오기 전에 활약했던 ‘체코의 드보르자크’ 등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드보르자크는 대체로 ‘아메리카의 드보르자크’이지만 브람스 같은 작곡가는 ‘아메리카의 드보르자크’보다는 ‘체코의 드보르자크’를 더 사랑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브람스는 신고전주의 작곡가로서 시대적으로 후기 낭만파에 속했으면서도 당시의 음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주장한 소위 ‘신고전주의’란 요즘으로 말하자면 친환경음악으로 돌아가지는 뜻이었다. 너무 화려한 선율,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심각한 내용, 대규모 오케스트라…뭐 이런 것들을 지양하자는 뜻이었는데 아무튼 정신적으로 너무 복잡하고 자극적인 음악을 삼가자는 취지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너무 이런 것들을 배제하다보니 브람스 음악 자체가 너무 난해해져버린 것인데 아무튼 브람스에게서 친환경적인 음악이 아닌 것으로 배척 받았던 작곡가들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브람스는 선율적인 작곡가들과는 대칭점에 서 있었다. 차이코프스키(X), 바그너(X), 리스트(X), 스메타나(X), 브루크너(X), 말러(X) 등은 모두 브람스의 적(?)이었다. 동시대 작곡가들에게 대체로 딱지를 놓기 좋아했던 브람스가 좋아했던 작곡가가 바로 드보르자크였다. 브람스는 드보르자크의 소박한 선율미를 매우 좋아했는데 브람스가 추천한 덕분에 체코의 시골뜨기 드보로자크는 일약 유럽의 주목받는 작곡계의 총아로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교향곡 5번 등은 브람스가 앞장서서 출판을 주선한 덕분에 널리 연주되기도 했으며 실내악 중 피아노 3중주 1번, 현악 사중주 2번, 현악을 위한 세레나데 등도 인기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정작 ‘신세계 교향곡’과 같은 대작에 대해서는 브람스가 그렇게 열광적인 환영을 보냈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도 브람스는 드보르자크의 선율적 재능보다는 내면의 소박하고 향토적인 선율미를 사랑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요즘에는 잘 연주되지 않지만 드보르자크가 남긴 9개의 교향곡 중 초, 중기에 속하는 1번-7번까지의 교향곡이야말로 소위 산사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공해 없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드보르자크는 체코 넬라호제베크라는 시골마을의 프란티셰크라는 도축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즉 조선시대로 말하면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인물이 음악을 좋아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나중에 성공해서 체코의 가장 추앙받는 작곡가로 거듭난 것 역시 불가사의한 일 중의 하나였다. 드보르자크는 시골 출신(?)의 인물답게 기차를 유난히 좋아했다는데 그것이 단순히 철마라고 하는 기계문명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철마를 타고 어디론가 먼 곳으로…늘 향수에 젖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기차는 ‘유머레스크’와 교향곡 9번 ‘신세계’ 4악장의 시작을 알리는 기관차 소리로도 너무도 유명한, 드보르자크 음악의 상징처럼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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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