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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오늘은 냉면

2021-07-29 (목)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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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한인 타운 음식점에 앉아 후룩후룩 뜨거운 육수를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 백인 청년들 앞에 시뻘건 비빔냉면이 날라져 오는 게 아닌가! 크크 메뉴 실패! 속으로 걱정하며 흘끔 건너다보니…

두 사람은 서투르나마 젓가락으로 면발을 잡아서 머리 꼭대기까지 팔을 올리더니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길고긴 국수의 끝자락을 입속으로 들여 밀고는 “헤이! 스파이시!” 외치며 다시 자리에 착석! 진정한 냉면 고수다.

땀이 삐질삐질 솟는 한 여름, 비냉이냐, 물냉이냐? 한국인 100대 고민 중 하나다. 고민 1위는 물론 짜장이냐, 짬뽕이냐? 2위는 탕수육 소스는 부먹이냐, 찍먹이냐?


한국음식 사랑에 빠진 나의 미국인 동료가 못 먹는 단 한 가지 메뉴가 냉면이다. 씹는 느낌이 고무 밴드 같다고 불평한다. 그 친구는 결코 모르리! 적당히 질긴 면발을 요령껏 끊어내고 쭐깃하게 씹어주는 냉면의 묘미를!

감각 심리학, 특별히 미각의 심리반응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빔냉면의 매운 맛에 주목한다. 매운 음식을 먹은 뒤에는 긍정적 심리반응을 일으킨다는 게 비슷한 연구 결과들이다(한국심리학회 학술자료, 2018). 실험에는 주로 매운 라면이 사용되는데 스스로 ‘매운 걸 잘 먹어.’ 하는 그룹과 ‘매운 건 못 먹는데...’하는 그룹, 둘로 나누어 스프 양에 차등을 둔 다음, 먹고 난 후의 정서 반응을 검사하는 파나스(PANAS; Positive and Negative Affect Schedule) 방식을 사용한다. 본래 매운 걸 좋아하는 그룹이 매운 걸 먹었을 때는, 못 먹는 그룹이 약간 매운 걸 먹었을 때보다 긍정 정서가 크게 올라간다는 결론이다.

비냉이냐, 물냉이냐 고민할 때도 얼음 동동 시원한 냉면 육수의 유혹 뿐 아니라, 비냉의 얼얼 매운 맛을 통하여 기분을 끌어올리려는 기대가 숨어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한국식품영양과학회, 2009)도 있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아침 거르기, 저녁 거르기 등 식생활이 불규칙해지고, 떡볶이나 불닭 양념치킨 같은 매운 음식이 더 땡긴다. 또 밍밍하게 집에서 차린 음식 보다는 외식을 통하여 자극적인 맛을 찾는다. 특히 맵고 짜거나, 차갑고 톡 쏘는 맛을 통하여 스트레스 쌓인 일상에 자극적 변화를 주려는 심리가 깔려있다.

비냉이든 물냉이든, 함냉이든 평냉이든, 그냥 난 분위기 따라갈래! 라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본인이 모르는 심리가 작용한다. 맛이란 혀끝이나 코끝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결국은 뇌가 인식하는 인지현상이다. 깔끔하게 차려진 고급 요리상 위에서는 더 이상 나의 선택이 가능하지 않지만, 왁자지껄 먹자골목 좌판에 앉아 눈, 귀, 코로 들어오는 다양한 먹거리는 내 선택이다.

이모! 여기 회냉면 하나, 기절 맵게요! 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입맛은 최대수용치를 기대한다. 뇌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라는 공감적 뉴런으로 설명한다. 감정이입이 흠뻑 이루어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다치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마치 자신이 다쳤을 때와 같은 뇌세포 활동이 감지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냉면에 들어가는 재료가 눈금 하나 안 틀리게 같아도, 느낌은 신경세포에 맞추어 각자 공감한다. 식당에 들어선 순간, 손님들이 뻘겋게 비비고 있는 비빔냉면, 갑작스런 ‘얼음 두통’(Cold Stimulus Headache)으로 자기 머리를 두드리면서도 훌훌 들이마시고 있는 물냉면, 다대기에 무친 홍어회의 세끼미 냉면…. 이런 맛이 절로 입안에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의 공감신경세포들이 활발히 움직인다는 증거다.

한편, 우리말 사랑에 못 이겨. ‘비빔’냉면이 무슨 뜻? 대신 ‘비빈’냉면이나 ‘비빌’냉면 주세요! 라고 하면, 매 맞으려나?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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