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구요’ 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으로 시작해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로 끝나는 강산에 노래인데 이산가족인 부모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사에 담았다고 한다.
가사에서 “아버지는 죽기 전에 꼭 한번 고향을 가보고 싶어 했었다”라고 간접화법으로 전하는 것보다는 본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라고 말했다’는 표현을 쓴 것이 너무 절절한 느낌을 준다. 이 ‘라구요’는 좋은 노랫말 가요 상을 받기도 했고 2018년 4월에는 강산에 씨가 평양공연에 참가해 고인이 된 부모님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불러 남북한 실향민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었다.
글을 쓰거나 말하는 것인 직업인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만을 전하는 것보다 때로는 전문가나 앞서간 이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효과를 배가할 때가 있다. 이때 남의 말이나 생각을 옮겨 오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원칙은 있다. 남의 말을 마치 자기의 것인 양 도용하거나 해석을 함부로 하는 일, 자기 생각은 없는 사람이 남의 말에만 의존하려는 태도 등은 용납이 안 된다.
목사는 늘 성경을 인용하면서도 내용을 쉽게 풀어 현재성 있게 교인들의 실생활에 적용시켜주는 것이 사명이다. 성경구절만을 외어 언제나 똑같은 내용만 전달하면 그건 무능한 목사이고 성경을 자의로 해석해 다른 길로 이끌어 가면 그건 사이비거나 이단이다. 연구자들이 논문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글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베껴 쓰는 표절은 무능이나 이단 못지않은 지적 범죄행위다,
장수시대인 요즘 나이와 연관된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강하게 격돌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70, 80 된 노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몸을 흔들어대고 목청을 높인다. 1970년대에 방송국에서 ‘인생은 60부터’라는 텔레비전 공개 프로를 제작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의 80세가 대강 그때의 60세에 해당되기는 했었다. 그렇다고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니.
또 다른 한 켠에서는 30대의 젊은 당 대표가 나와 ‘꼰대는 가라’고 소리를 치자 50대 60대의 정치인들이 ‘나이 먹어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가하면 청와대도 그 분위기에 편승해 느닷없이 90년대 생 비서관을 임명했다. 남들이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부르고, 남들이 ‘90년대 생이 온다’라는 책을 탐독 한다고 ‘라구요’의 의미를 견강부회(牽强附會)할 일이 아니다.
나이 많은 게 벼슬이 아닌데 세상의 가치를 나이순으로 서열화하는 것도 나쁘지만 나이가 젊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흥망성쇠를 온통 자기네가 짊어진 듯한 착각은 말아야 한다. 나이든 사람 중에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고, 젊은이 중에도 매우 보수적이거나 시대정신과 역사인식은 외면한 채 대중의 인기에만 휩쓸려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정치철학이나 식견이라고는 없는 사람이 남이 박수쳐준다고 대통령선거에 나가겠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거니와 대통령이 무슨 어린이회장 자리도 아닌데 자기 아버지가 ‘대한민국을 밝혀라’고 했다며 대통령을 해보겠다는 것은 구상유취(口尙乳臭)한 행동이다. 대통령 할 사람은 ‘라구요’가 아니라 세상을 깨우치는 우렁찬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지금쯤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이며 왜 대통령이 되려는 것인가에 대한 차분한 논리나 설명이 나와야 한다. 그런 모습들은 없이 장터에 나온 떠돌이 장사꾼들 마냥 호객행위만 요란하다. 야당이 그러면 여당이라도 모범을 보여야하련만 볼썽사나운 난타전만 벌이는 가운데 앞장선 사람 중 한쪽은 너무 가볍고, 한쪽은 너무 무겁고…. 김대중 대통령처럼 두루 갖춘 인물이 아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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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