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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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산허리에 비단강 물줄기…대청호반 ‘끝마을’

2021-07-16 (금) 옥천=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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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박자박 소웁탐방 - 옥천 군북면 부소담악과 수생식물학습원

옥천 군북면 석호리로 들어서는 길목, 마을을 소개하는 안내판에 옛 사진 한 장이 삽입돼 있다. 굽이도는 강줄기 안쪽으로 하얀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백사장 가장자리에 미루나무도 두어 그루 보인다. 물비늘 반짝이는 맑은 강물, 눈부시게 고운 모래가 어우러진 풍경이 바로‘비단강’, 금강(錦江)의 본래 모습이다. 옥천 출신 정지용 시인이“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 노래했던‘향수’의 풍경과 퍽 닮았다.

■끊어질 듯한 산허리 ‘끝마을’ 풍경

지금 옥천 땅을 흐르는 금강에서 모래사장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1981년 대청댐을 완공한 후 재잘거리던 강물은 호수로 변했고, 은빛 금빛 모래사장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던 마을도 수중에 잠겼다. 용케 수몰을 면한 곳은 호수 건너편 산자락을 한참이나 돌아서 들어가야 하는 ‘끝마을’이 되고 말았다.


대신 푸른 물을 가득 담은 강줄기는 더욱 선명해졌고, 주변 산세가 비친 잔잔한 수면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한다. 물줄기 폭이 넓어진 만큼 가늘어진 산줄기가 음각과 양각처럼 한 몸이 되어 새로운 지형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곳이 군북면 부소담악(浮沼潭岳)이다. 물위에 떠 있는 금강산 같다고 해서 조선 중기의 학자 우암 송시열이 붙인 이름이다. 바로 앞 수몰된 마을은 ‘부소무늬’였다고 한다. 연꽃 같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비유이니 ‘연꽃 부’ 자를 써서 부소담악(芙沼潭岳)이라고도 한다.

대청호 호수로 1km가량 가늘고 길게 뻗은 산줄기다. 개미허리처럼 좁아졌다가 다시 연결된다.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산허리는 든든한 바위 군상이 병풍처럼 떠받치고 있다. 수위에 따라 잠겼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한다. 흰빛이 감도는 암벽에 희미하게 물 무늬 자국이 남아 있다.

부소담악은 주변이 대청호에 잠기면서 형태가 더욱 도드라졌지만, 그 아름다움은 예부터 이름나 있었다. 마을에서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가면 가장 높은 언덕에 추소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근래에 세운 번듯한 2층 정자다.

가는 허리를 따라 조금 더 가면 옛 정자가 있던 자리인데, 지금은 관광안내소가 들어서 있다. 소나무가 운치있게 자란 산책로 좌우로 고요하게 푸른 호수가 펼쳐지고, 나뭇가지 사이로 강 건너 호반마을이 잔잔하게 눈에 들어온다.

파노라마로 이어지는 부소담악의 전체 모습은 당연하게도 바깥에서 봐야 제대로 파악된다. 추소마을 뒤편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가장 잘 보이는데, 위치 좋은 곳은 이미 몇몇 카페가 선점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전망대 하나 갖추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대신 추소마을 아래 호숫가에 대형 주차장을 조성해 놓았다. 물줄기, 산줄기가 휘휘 돌아가는 전체 지형이 파악되지 않아 경치가 다소 평면적이다.

부소담악에서 호수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넘으면 방아실마을 끝자락에 ‘수생식물학습원’이 있다. 이름만 보면 오염된 물을 정화시키는 환경의 파수꾼, 수생식물이 가득한 생태교육시설 같지만, 실제는 전망 좋은 호숫가 언덕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정원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매표소(입장료 6,000원)를 통과하면 ‘좁은 문’을 지나 여러 가지 화초가 자라는 오솔길이 연결된다. 오솔길 끝 카페 우측으로 제법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커다란 암반이 버티고 있는 가장자리로 목제 산책로가 놓여 있다.

경사진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진 산책로 어디서나 대청호 호수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몇몇 지점에는 사진 찍기 좋도록 대형 액자를 설치했다. 카페 주변 나무 그늘에는 의자와 테이블을 놓아 호수와 어우러진 풍광이 여유롭다.

산책로가 끝나는 언덕 꼭대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가 있다. 두세 명이 앉을 수 있는 벤치가 2열로 배치돼 있고, 십자가가 걸린 정면 창문에는 짙푸른 호수가 한 가득 담겼다. 성찰과 기도의 공간이 이렇게 예뻐도 되나 싶을 정도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파스텔 톤으로 연분홍과 파란색이 뒤섞인 초여름의 꽃, 수국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부소담악과 수생식물원은 대청호오백리길 7구간에 해당한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강 풍경과 호수마을 정취를 즐길 수 있어,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에서 비대면 여행지로 추천하는 길이다.

■경치 좋은 금강 ‘핫플’, 선인들이 먼저 알아봤다

금강에서도 경치가 빼어난 곳, 요즘으로 치면 ‘금강 핫플레이스’는 옛사람이 먼저 알아봤다. 서화천이 금강으로 합류하는 군북면 각신마을에 ‘이지당(二止堂)’이라는 누각이 있다. 산비탈 너럭바위에 터를 잡아 앞으로는 유유히 강이 흐르고, 뒤편 산자락에는 기암에 버티고 있어 경관이 수려한 자리다.

이지당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조헌이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마을 이름을 따서 설립한 각신서당(覺新書堂)으로 시작됐다. 임진왜란 때 옥천, 홍성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으나 금산에서 700의병과 함께 전사한 인물이다.

그가 죽은 후 80여 년 뒤인 1674년 승지를 역임한 문신 김만균이 건물 왼쪽에 누각을 새로 추가했고, 송시열이 이지당으로 명칭을 바꿨다. 이후 1901년 인근 옥각리의 금·이·안·조씨 네 문중에서 건물을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지당은 ‘시전(詩傳)’의 ‘고산앙지경행행지(高山仰止景行行止)’라는 글귀에서 ‘그칠 지(止)’ 두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산이 높으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병장 조헌(1544~1592)과 예송논쟁의 중심 인물이자 노론의 영수 송시열(1607~1689)은 살았던 시대가 다르다. 삶의 궤적도 그만큼 이질적으로 보이는데, 옥천을 매개로 기호학파라는 학맥으로 연결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건물은 ‘이지당’과 ‘각신서당’ 두 개의 현판을 달고 있는 정면 건물 양쪽에 2층 누각이 연결된 특이한 구조다. 코앞으로 흐르는 서화천변에는 지금 좁아진 물길 사이로 하얀 개망초가 한창이다. 당파 싸움의 한가운데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노학자의 완고함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가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부소담악과 비슷하게 ‘끝마을’이 된 석호리로 이동하면 넘실거리는 호숫가 바위에 청풍정이라는 누각이 얹혀져 있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확인되지 않고, 조선 후기 김종경이라는 참봉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맑은 물과 바람이 머문다는 이름처럼, 수몰 이전의 청풍정은 옥천에서 손꼽히는 절경이었다고 한다. 바로 앞에는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절벽에 부딪혀 소를 이루었고, 늘어진 버드나무가 10여 리나 곧게 뻗어 있었다고 한다.

수몰 지역에서 올려 세운 정자 앞으로 지금은 넓고 깊은 호수가 펼쳐지고, 정자 뒤편 ‘명월암’은 머리 위에 바로 보일 정도로 낮아져 멋들어진 운치를 상상하기가 어렵게 됐다. 청풍정에는 개화파의 지도자 김옥균(1851~1894)과 기생 명월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진다.

김옥균은 자신이 주도했던 갑신정변(1884)이 3일천하로 막을 내리자 옥천으로 내려와 이곳 청풍정에서 세월을 보냈다. 그가 아끼던 명월은 나라의 큰일을 할 장부가 자신 때문에 외진 곳에서 허송세월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정자 앞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둘의 절절한 사연도 빼어난 절경과 함께 깊은 강물 속으로 가라앉은 걸까. 잊혀진 풍경과 옛이야기를 뒤로하고 청풍정 앞 호수에서는 바나나보트와 수상스키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른다.

<옥천=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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