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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신비 속의 잠과 꿈

2021-07-13 (화)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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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꿈은 꾼 것 같은데 기억이 오락가락 하네요. 여자도 같고, 고양이 같기도 한 것을 물속에서 건져주었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감이 안 잡혀요. 내 꿈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불안증세를 가진 한 젊은 환자가 들려주는 꿈 내용이다.

성(Sex)과 더불어 잠과 꿈만큼 인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는 별로 없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과학자, 의학자, 철학자들이 숱한 이론을 내놓았지만 극히 제한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아직도 잠과 꿈은 신비 속에 싸여있다.


하루의 상당기간 우리는 잠 상태이다. 삶의 1/3을 잠이란 의식세계 밖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잠은 비램 수면과 램 수면이 번갈아가며 반복된다. 비램 수면의 1~4단계, 그 뒤 램 수면의 5단계가 한 주기다. 주기마다 약 90분이 소요된다. 8시간 잠을 잔다면 대략 4~5번 주기를 반복한다.

램 수면은 아주 얕은 잠, 깨어나기 직전의 몽롱한 의식상태에 가까우며, 비램 수면은 서서히 깊게 빠져드는 잠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잠자는 동안에는 뇌를 비롯해 모든 장기와 근육이 휴식하는 걸로 알았다. 그러나 눈동자를 굴리며 자는 램 수면 중에는 뇌세포들이 오히려 왕성히 활동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흡과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압도 올라가는 교감신경계의 활성화를 보이지만 신체근육은 매우 이완되어있는 게 특징이다. 즉 뇌는 일을 하지만 몸은 쉬고 있는 잠이다.

꿈은 잠자는 동안에 생긴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물체가 보이고 소리가 들리는 시각과 청각현상에 생각과 감정이 섞여져 나온다. 꿈 역시 처음엔 램 수면에만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 후 더 많은 연구결과는 꿈이 비램 수면에도 생기는 것을 관찰했다. 꿈은 거의 80%가 램 수면에서 발생하지만 수면의 어느 단계에서든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기억을 못할 뿐이다.

램 수면 꿈 중에도 아주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5% 정도며 대부분은 어렴풋이 생각나는 어설픈 꿈이다. 일반적으로 낮 시간에 너무 충격적 감정을 경험했거나 심리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또렷한 5% 꿈의 소유자들이다. 인생이 고해라 하듯 행복한 꿈보다 불행, 불운, 실패의 꿈들이 훨씬 많다.

꿈은 왜 꾸는 걸까? 꿈을 과학적으로 처음 분석하기 시작한 사람은 20세기 초 프로이드 선생이다. 프로이드는 무의식 속에 억압된 욕망과 갈등이 꿈을 통해 표현되어지는 것이라 주장했다. 칼 융은 억압된 욕망, 감정뿐 아니라 깨어있을 때 하고 싶었던 일상의 모든 게 꿈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일종의 보상심리 과정이다.

반면 신경뇌과학자들은 꿈이란 단지 뇌간(Brain stem), 해마, 대뇌피질로 이어지는 의식회로와 기억회로 사이에서 생기는 뇌 활동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즉 예전에 형성된 기억들이 의식상태에선 서로 연관이 안 되어 탐색이 어려웠으나 뇌조직의 전기 화학적 영향으로 발생한 꿈을 통해 처리하고 강화되는 과정에서 연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꿈은 무작위로 일어나고 이해하기 힘든 뇌 활동이지만 낮 동안 경험한 여러 사건이나 상황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모든 학자들이 동의한다. 꿈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이 있다. 신체적, 정신적 휴식을 위한 것, 몸의 노폐물과 뇌 속에 쓸데없이 남아있는 찌꺼기 기억을 걸러내는 과정,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무한한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한 목적,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불행한 사태를 미리 암시해주는 점쟁이 역할 등이다.


또렷하고 앞뒤 연결이 잘 되어 줄거리가 있는 내용의 꿈은 무의식이 일을 많이 한 징표다. 윤리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욕망, 공격성으로 고통에 처해있는 무의식은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들을 의식 밖으로 내보내려고 한다. 그런데 의식의 저항이 너무 심해 의식의 입맛에 맞게 재단할 수밖에 없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환, 승화 같은 방어기제의 형성이다.

앞의 젊은 환자의 꿈은 어설프고, 이상하며 별 의미도 없고 앞뒤가 잘 연결이 안 되어있다. 시쳇말로 개꿈이다. 개꿈은 오히려 환자에게 편안한 꿈일지도 모른다. 마음속의 문제들이 심하지 않아 잠자는 동안 무의식이 크게 신경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꿈인데요. 불안증세가 좋아지고 있다는 꿈입니다.” 환자에게 웃음을 보이며 꿈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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