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춤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른다. 특히 노래방이 생긴 후부터는 노래 못 부르는 한국사람을 찾기 어려워졌다. 한국사람들은 즐거울 때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슬퍼서 울 때에도 노래하듯 곡조에 맞춰가며 운다. 장사판에서 물건을 흔들어 팔 때도 노래를 하고 하다못해 남의 집에서 동냥을 할 때도 걸판지게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밥을 빌어먹는다.
새벽에 우체국에서 근무하다보면 우편물을 분류하는 단순작업의 무료함을 덜기 위해 자연스레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데 트롯과 우리 민요는 물론 팝송과 판소리까지 다양하게 변화하는 레퍼토리에 동료 직원들은 내심 놀라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미국인들은 생각보다 노래를 많이 알지 못하고 잘 부르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이 어쩌다가 제 흥에 겨워 노래를 할 때에는 노래라기보다 고양이나 개가 가르릉 거리는 소리로 들린다.
한번은 어느 동료 직원의 생일날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불러주었더니 그 단순한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박수를 쳐대서 멋쩍어진 적이 있었다.
나이를 먹으니 한평생 살아오면서 듣고 부르던 노래들이 된장이나 묵은 지처럼 마음속에서 저절로 발효되었는지 나름대로 특색 있는 소리가 되어 나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늙은이의 목소리도 일종의 악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듯 나의 감정을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다.
e-bay에서 오래된 기타를 싼 값에 구해 줄을 끼운 다음 아무도 없는 다락방에 올라가 기타 반주에 실어 노래를 불러보았다. 소싯적에 배운 기타인데도 몇 번 쳐보니 손가락들이 신통하게도 제 갈 길을 찾아 코드를 짚어주었다.
백설희씨가 부른 ‘봄날은 간다’를 몇 번 연습한 후 스마트폰으로 비디오를 찍어 ‘어느 할배가 부른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렸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이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영상을 업로드 한 지 2주 정도 지나서였다.
100명대에 머물러있던 뷰어(시청자) 수가 갑자기 치솟더니 하룻밤 새에 2,000명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무명의 유튜버가 영상을 올리면 보통 한 달에 100명의 뷰어를 확보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단 2주 사이에 2,000뷰어라니… 이변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3주가 지나자 뷰어수는 1만 명대로 뛰어올랐고 4주째에는 6만 명대로, 5주째에는 드디어 10만 명을 돌파하였다. 뷰어가 10만 명이 될 때까지 5주가 걸렸으나 10만에서 20만 뷰어가 되는 데에는 단 1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 볼품없는 백발노인이 부른 옛 노래를 수십 만 명이나 들어와서 보다니…
폭발적인 뷰어수의 증가와 함께 수백건의 댓글들이 올라왔다. 댓글의 내용은 ‘MSG(조미료)가 섞이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목소리…’ 인생의 연륜과 회한이 한껏 묻어나는 듣기 좋은 소리공양…’, ‘기교 없음이 듣기 편안함…’ 등등 거의 찬사 일색이었다. 댓글을 올린 사람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연예인도 끼어있었다.
뜻밖에 벌어지고 있는 희한한 현상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사람들의 ‘레코그니션(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웠다. 댓글 회신해주랴, 새 노래 연습해서 올리랴 바빠서 요즈음엔 신문에 글도 자주 올리지 못했다.
‘세상의 할배 할매들이여 우리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내 안의 ‘끼’를 한껏 발산하여 세상에 공양하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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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