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앵콜 클래식] 쇼팽과 베토벤

2021-07-09 (금) 이정훈 기자
크게 작게
어느 작가가 말하기를 ‘예술가가 천재로 남기 위해서는 끝이 꼭 비극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고 어느 정도 틀린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림에서 반 고흐처럼 불행했던 예술가가 있었다면 세잔이나 모네처럼 평범하게 일생을 마친 천재들도 많았다. 유명한 여류 작가 조르쥬 상드와의 염문, 폐병으로 기침을 해대며 피아노와 함께 살다 피아노와 함께 죽어간 쇼팽이야말로 수많은 화제를 남겼던 불행한 예술가의 전형이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불행한 예술가들이 있다. 하나는 사랑과 예술로 인생을 불사르며 불나방처럼 살다 간 경우와 세상을 외면하고 철저한 고독속에 파묻혀 살다간 경우다. 베토벤은 후자였고 쇼팽은 전자에 속하는 경우였다.

쇼팽은 ‘샬롱’등에서 수많은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며 그녀들을 위해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만들며 청춘을 불사르다가 39세로 요절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샬롱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실내적인 서정… 자기 안에 갇혀 자기 세계만을 관조하며, 수줍게 예술을 꽃피우다 짧은 생을 살다갔다. 쇼팽은 장중한 소나타를 주로 썼던 베토벤과는 달리 연습곡이나 야상곡, 월차 등 즉흥적인 소품을 주로 썼고 공개적인 홀보다는 작은 살롱이나 실내에서 연주하기에 알맞는 곡들을 주로썼다. 물론 요즘 들어서는 쇼팽의 작품들도 콘서트를 위한 곡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당시만 해도 쇼팽의 음악은 어디까지 소수를 위한 음악이었다. 웅장하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친밀감이 있고, 형식적인 규모는 작지만 부담감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 강렬한 피아니시즘은 없지만 묘하게 내면에 울리는 시적인 정서... 베토벤의 음악과 비교하자면 조금 여성적이지만 섬세하면서도 기품있는 쇼팽의 음악은 어딘가 귀족적이면서도 보헤미안적인 애수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베토벤, 쇼팽 등이 활약하던 19세기 초, 인간의 평균 수명은 40세 정도였다고 한다. 쇼팽이 39세, 베토벤이 57세를 살았으니 베토벤은 비교적 장수한 편이었고 쇼팽도 폐병을 앓았던 환자 치고는 비교적 오래 산 편이었다. 산업혁명이 끝나고 의학, 과학 등의 정보가 눈부시게 발달한 시기였지만 그때만 해도 유럽은 폐병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너무나 무기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19세기를 통해, 어쩌면 인류의 지성들에게 가장 잔인했던 격변기 속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된 문명을 꽃피우게 했는데 특히 음악계에서 쇼팽과 베토벤 등의 등장이야말로 이러한 혹독한 시기를 음악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게 했던 위대한 축복이었다.

쇼팽이란 이름은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콩쿨이 말해 주듯 피아노(분야)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존재다. 베토벤의 이름을 딴 콩쿨은 없지만 피아노 하면 단연 쇼팽이다. 당시만 해도 일개 피아노의 방랑자에 불과했던 쇼팽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830년, 당시 약관 20세였던 쇼팽이 빈에 등장하자 슈만같은 평론가는 ‘여기 위대한 천재께서 나타나셨습니다’하며 모자를 벗고 극찬해 마지 않았지만 쇼팽은 그러한 환영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에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슈만의 칭찬이 어디까지나 쇼팽의 예술과는 동떨어진 오해가 개입됐을 여지를 쇼팽이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쇼팽은 슈만의 칭찬에 대하여 ‘그가 나를 오히려 바보로 만들 뿐’이라고 화를 냈다는데, 쇼팽의 이같은 표현은 다소 과장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사실 쇼팽이야말로 당시 슈만 등이 빠져 있었던 독일 낭만주의와는 전혀 관계도, 관심도 없었다.


‘위대한 천재라니요? 나같은 사람을 베토벤이나 또 다른 위대한 사람들과 함께 평가해 주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그저 조용히 피아노를 즐기고 살롱같은 곳에서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주면 그만입니다.’

언뜻 상당히 자신없고 내성적인 발언인 것 같지만 사실 쇼팽이야말로 그저 피아노가 자신에게 말하려 하는 것을 담담하고 솔직히 표현해 나가려 했을 뿐이었다. 이같은 철학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이고 다소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피아노에 있어서 베토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천재가 아니고서는 취할 수 없는 태도이기도 했다. 사실 독일 음악은 쇼팽의 음악에 비교하면 너무 인위적이고 딱딱했다. 독일적인 딱딱함이 자유분방함을 억제하고 또 그것이 하나의 형식으로서 기품을 표현하는데는 유리했는지 모르지만 피아노라는 악기로 한 사람의 우주…그 모든 것은 담기에는 너무 소극적인 방법이었다. 물론 딱딱하지만 그 형식 속에서 내면의 우울과 고통을 승화시켜 나간 베토벤의 음악이야말로 지금도 추앙받고 있는 위대한 예술이었다. 서양은 바하의 평균율을 구약성서, 베토벤의 소나타를 신약성서라고 부른다. 그러나 쇼팽에게는 어떤 족보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피아노 음악 하나로서 후대의 예술가에게 강한 영감을 남기고 또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진정으로 족보있는, 뭇 사람들의 영혼을 훔친 사람은 바로 쇼팽이었다. 피아노계의 두 천재 ‘쇼팽과 베토벤’…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정훈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