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것들은 말이나 감정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마음속에 쌓여있던 자기 욕망이나 우월의식 혹은 우울, 절망, 분노, 스트레스, 열등감 등이 거칠고 사납게 폭력성을 띠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자기욕망이나 자기주장 혹은 상처, 불만, 두려움, 열등의식, 모멸감 같은 내면의 감정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강자는 강자의 폭력을 사용하고 약자는 약자의 폭력을 행사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는 언어폭력, 사이버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동물학대 폭력, 인종차별폭력, 국가폭력 등등 가히 ‘폭력사회’라 할 만큼 곳곳에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이제는 ‘폭력은 나쁜 것이니 폭력을 쓰면 안 된다’는 말은 공허한 말이 되어가고 있다. 솔직하고 진지하게 폭력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폭력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폭력의 개인적 사회적 원인에 대하여 살펴보고, 각자의 방식으로 찬찬히 내 마음의 폭력성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늘어나는 현대인의 폭력적 경향과 관련하여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기상이변이 발생할수록 인간의 폭력적 행동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후사회학자들이 예측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량 부족, 전염병 증가, 경제적 양극화, 경제적 어려움 등이 발생하면 범죄나 국지적 전쟁 같은 폭력적 현상이 더욱 증가하리라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지구생태계뿐 아니라 인간의 폭력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의 본성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세상 여기저기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비폭력 혹은 무폭력으로 살아가는 길은 없는가? 폭력의 세상을 평화로운 세상으로 바꾸는 길은 없을까?
세상 전체를 바꾸는 길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세상의 한 모퉁이인 나를 바꾸는 길에 대하여는 한 시인의 시에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내가 먼저 변화된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리의 모든 것이다. 그것이 희망의 모든 것이다. 그것이 혁명이 시작과 끝이다.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나 하나의 혁명이, 박노해)
폭력은 참된 힘이 아닌 허력(虛力)이다. 거칠고 사납고 무익하며 무자비한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을 뿐이며,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과 원한을 가져온다.
폭력 없는 삶의 시작은 내 안의 폭력성을 알아차리는데서 출발한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 속에 폭력성이 있는지 늘 살펴야한다. 내 안의 폭력성이 부지불식간에 때와 장소, 사람을 가리지 않고 여러 가지 폭력의 형태로 불쑥불쑥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폭력성 역시 길들이기 어렵다. 없는 듯 하다가도 어느새 나타나 별일 아닌 일에 열을 내고 화를 내며 모진 말이나 무례한 댓글, 험악한 표정, 상대방에 대한 모욕이나 무시 등의 행동으로 폭력을 표출한다. 결국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며 후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늘 마음을 살펴 거칠고 험한 폭력의 싹을 알아차리면 얼른 멈추고, 달래고, 기도하여 내보내야 한다.
폭력 없는 삶을 위한 또 다른 길은 ‘모심’의 실천이다. 상대방을 모심(serve)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이른바 심리적 균형이론이다.
모심은 두루 사랑함이고, 공손히 받드는 공경이고, 기꺼이 나를 내어주는 섬김이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배움의 관계를 뜻한다. 모심은 또한 ‘무슨 일에나 자기를 내려놓고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필립2:3)이다.
늘 마음을 살펴 내 마음의 폭력성을 달래고, 모심의 마음을 회복하고 길러야한다. 모심의 삶이 곧 폭력 없는 삶과 폭력 없는 세상을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자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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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