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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아버지의 나라, 어머니의 나라

2021-07-07 (수) 이상대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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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면 그제야 내가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가진다. 최근에 운동선수의 국적 변경이 일간지에 다루어진 것을 보았다. 쇼트트랙 황제 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 이후 중국 올림픽 대표팀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소식과 최근 중국으로 귀화한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효준, 프랑스 귀화 절차 중인 전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 석현준 등에 대한 기사이다.

내게 국적이란 무엇일까? 미국에서 20년째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인이다. 그리고 수년 전에 미국인이 되었다. 한국과 미국이 어떤 존재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미국은 아버지의 나라이고 한국은 어머니의 나라라고.

사실 운동선수들의 국적 변경은 외국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한국의 최근 현상이 유독 이슈가 되는 것은 아마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의 위엄 탓일 게다. 차후 그들의 성취 결과는 국가의 영예와 관계하기에 오롯이 개인에 기인한 결정은 공인으로서나 도덕적으로도 영예롭지 않아 보인다. 그 부정적 여론의 뿌리도 민족이 국가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이라 여기는 데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배타적 기준으로 배제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이미 인구감소와 타민족의 유입이 늘고 있으니 그들을 적극 수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타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이 과거 패권국가들의 성취를 흡수해내는 수용 능력에 있다.

국제시민사회 시대에 있어 국가, 인종, 민족적 사고방식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개인보다 국가나 민족을 종용하는 가치관과 적군 혹은 아군의 이분법적 구분에 근거한 배타성을 지양하고 단점을 부각하지 않는 융합적 신분 인식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자아보다 민족과 국가가 중시되는 시절이었다. 식민시대와 분단의 격동을 거쳐 급진적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개인보다 더 큰 것에 명분을 두던 시대였다.

그런데 세상은 과학과 기술에 따라 많이 변모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일상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전형적인 개념 및 경계를 바꾸어놓았다. 더 이상 국가의 범주로 자아를 제한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팬데믹은 불가능할 것만 같던 가상의 공간을 주 공간화 하였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물리적 사회 공간이 각광을 받던 때에서 새 시대성을 수용한 것이다.

코리안 아메리칸은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다. 굳이 국적만으로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 시민권은 미국 땅에서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도구인데 그것은 한국 국적 자동소멸로 이어져있다.

때론 해외 국적 취득 사실이 부정적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나 한국 선수를 제압한 일본 국가대표 추성훈에게 붙여진 ‘조국을 메친 선수’와 같은 표현들이다. 입대를 공언하던 한 연예인이 시민권을 취득한 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괘씸죄로 십 수년째 한국 입국이 불허되었다. 반면 나라사랑이 지나쳐서 미국에서 십 수년을 영주권자로 살면서 국적만은 바꾸지 않겠다는 이들도 있다. 불법체류자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 한국인이다.

흔히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미스 반 데 로에는 독일 태생으로 30년간 독일에서 실무하다 억압적인 나치 체제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바우하우스라는 근대 건축교육기관의 학장을 지내다 미국 이주 후 국제주의 양식의 실무와 일리노이 공과대학 건축 학장을 맡으며 교육으로 30년간 활동하였다. 건축의 역사에서 필수적인 존재로 국가를 초월한 세계적 건축에 공헌하였다. 현대 건축의 가장 위대한 거장으로 인식되는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출생으로 1930년대에 프랑스인이 되었지만, 현재 스위스의 10프랑 지폐에 등장한다. 이 두 건축가는 20세기 최고의 건축 거장이라 불린다. 국적의 제한에 묶여 그들의 자유, 실험, 이상을 펼치지 못했다면 지금의 건축이 어떠하였을까?

<이상대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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