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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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사는 문화

2021-07-03 (토)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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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고국의 정가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일 것이다. 그의 정치철학이나 현안에 대한 생각에는 나와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떠나 고국의 정치 풍토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좀 더 진보된 대화와 토론 그리고 민주적 절차 준수가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또한 경험 부족으로 실수도 할 수 있고 더 배워야할 부분도 많이 있을텐데, 여야를 떠나 주위에서 그런 점을 이해해주고 이 대표 자신은 겸허한 자세로 자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지난주에는 이 대표가 여당의 송영길 대표를 만났다고 한다. 5선 국회의원이며 22세나 위인 여당 대표와의 만남이 어땠을까 궁금했는데 보도된 내용으로만 보아서는 두 대표 모두에게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공개적으로 나눈 대화에서 이 대표가 식사를 제안했는데 그 부분도 흥미로웠다. 이 대표는 송 대표에게 “기회가 되면 제가 식사 한 번 모시고 어떻게 보면 값싸게 정치경륜을 배울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데 응해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송 대표는 웃으며 “정치권에서는 현역이 밥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 대표도 “이렇게 제안하고 얻어먹는다”고 화답했다.

이런 대화 내용을 접하면서 우리 한인들의 정서에는 역시 밥 먹으면서 얘기하는 것이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우리가 나누는 인사 중 가장 많은 것 중 하나가 ‘우리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가 아닌가. 그러면서 내가 교육위원으로 일 할 때 ‘밥 먹기’에 대해 새로 배워야했던 미국 문화의 일면이 생각났다.

내가 초선 교육위원이었던 시절이다. 당시에는 워싱턴포스트 신문사에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 전담 취재기자가 있었다. 교육위원들은 밤늦게 회의를 마치면 종종 회의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에 들러 편한 마음으로 식사나 술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물론 3명 이상의 교육위원들이 사전 공지 없이 모여 교육관련 이슈를 의논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에 대화 내용은 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식당에 워싱턴 포스트 기자도 가끔 들렀다.

그리고 그 기자는 다른 곳에 앉아 있다가 때로는 교육위원들 자리에 합석했다. 기자와 취재원 사이의 관계이지만 그런 사적인 자리에서는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술도 한두 잔 마시기도 했다.

그런데 그 기자는 자신의 술값은 꼭 본인이 지불했다. 절대로 교육위원들이나 같은 자리에 있던 교육청 홍보담당자가 대신 내지 못하도록 했다. 술값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적 정서로는 ‘야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철저했다.

그 기자뿐만이 아니라 후임 기자들도 모두 같은 원칙을 유지했다. 만일 식사를 같이 하면서 나를 인터뷰 할 경우엔 본인이 식사비를 모두 부담하든지 아니면 적어도 본인 식사비만이라도 자신이 꼭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한국의 문화에서는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지불한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또 한 번은 여러 해 전에 버지니아 주 법무부 장관과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하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때 법무부 장관은 선거 준비도 하는 중이었기에 선거 참모 한 명과 같이 했다. 물론 대화 내용은 선거관련 뿐만이 아니라 정책적인 부분도 포함되었다.

그 때 식사를 마친 후 내가 식사비를 계산하려 하자 법무부장관은 극구 안 된다고 했다. 비용의 규모와 상관없이 자신은 공직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이 원해서 만난 것이니 오히려 자신이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의 선거 참모의 식사비는 선거자금에서 지불되어야한다고 했다. 결국 셋이 각자의 식대를 나누어 내게 되었다.

이렇게 공직자의 식사비용 지불에 있어 한국과 다른 문화에 익숙해지는 데 나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번에 한국의 여당대표가 야당대표에게 현역이 밥을 사야 한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문화의 다름에 대한 서로 간의 이해와 존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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