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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체 여과율과 사랑

2021-06-26 (토)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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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 많은 것이 순조로워 질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지만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릴 것이고, 새로운 질병, 환경문제, 인간관계들이 우리를 계속 괴롭힐 것이다. 우리는 완전치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고 인간의 본성은 선에서 너무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 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각 나라의 관계를 보아도 대통령이 바뀐다고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다 해결되겠는가? 각국이 가지고 있는 욕심이 많기 때문에 잠깐의 대화와 평화는 유지되어질 수 있겠지만 상대 국가가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분쟁은 언젠가 다시 시작될 것이고 갈등은 또 다른 형태로 분출될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부에서 오는 공격과 싸우는 것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공격은 각종 병균과 스트레스, 환경오염,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어져서, 우리는 여러 종류의 염증, 암, 심장병, 뇌졸중이나 아니면 동맥경화로 인한 노화 현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환자들을 진찰하며 많은 혈액검사를 하고, x-ray 찍는데 그 결과들을 보면 몸 밖으로 증상은 없는데도 비정상적인 소견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해드리면 놀라시는 환자분들이 많다.


한 예로, 신장 안에 있는 작은 소쿠리 같이 생긴 사구체는 혈액을 거르는 필터인데, 한쪽 신장에 약 100만개 씩 있다. 우리 몸의 사구체는 매일 약 200 리터의 혈액을 걸러내면서 2 리터의 정도 소변을 생산해낸다. 소변은 불필요한 물과 노폐물인데 신장의 기능이 손상되면 사구체 여과가 감소되며 소변양이 줄고 노폐물이 혈액 내 축적되기 시작한다. 신장의 기능은 사구체여과율로 알 수 있다. 혈액 검사로 노폐물의 농도, 환자의 나이, 몸무게가 있으면 사구체 여과율을 계산 할 수 있는데 신장의 남아있는 기능을 %로 나타낸 수치이다. 보편적인 계산 공식에 의하면 사람의 콩팥기능은 40세 때 100%로 가장 왕성하고 질병이 없어도 1년에 1%씩 자연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약 70세가 되면 아무런 질병이 없이 건강을 자랑하는 사람도 신장 기능은 70% 미만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뇨, 혈압, 동맥경화증, 비만, 스트레스 등이 겹쳐 1 년에 1% 이상이 떨어지게 되며 대부분 70세에서는 신장기능이 50% 정도에서 머무른다. 혈액검사에서 이렇게 신장 기능이 감소 되어있음을 알려드리면 놀라시면서 콩팥이 더 나빠져 투석을 하게 될까 걱정들을 하시게 되는데, 신장 기능이 10%에 가까이 가면 투석이 필요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대부분은 그전에 신장병보다는 다른 질병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신장 기능의 계산법, 사구체 여과율의 원리는 모든 장기에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다른 장기들은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계산하지 못할 뿐이지, 심장, 췌장, 뇌, 폐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즉 70세 정도 되면 모든 장기의 기능이 50% 정도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혈액검사와 방사선 검사에서 모든 것이 완전한 성인은 없다고 보면 된다. 의사가 “좋습니다” 하면, 나이에 걸맞게 좋다는 뜻이지, 40세처럼 왕성하다는 것은 아니다. 가끔 검사결과를 이야기 해드리며 치명적인 병은 아니지만 옛날에 앓았던 흔적이나, 약해져서 조심해야 될 소견들을 들려드리면 언제 갑자기 그렇게 되었냐고 깜짝 놀라시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 모두는 완전에서 불완전으로 가는 과정에 존재하고 있다는 진리를 생각한다면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또한 그 길의 끝은 절망적인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세계로 옮겨지는 관문이기도 하기에, 슬픔이 아닌 새로운 희망이기도 하다.

그러면 검사와 치료를 통한 건강 유지는 왜 하는가? 매년 기능이 떨어지는 우리 몸이 불완전해 가는 속도를 천천히 해주며 고칠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고, 살아있는 동안 잘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에 따라 결국 육체의 기능이 서서히 내려가는 것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절박하며 매순간이 소중하다. 우리 일생은 싸움은 고사하고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사랑이 유일하게 낙담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다. 더 큰 사랑은 큰 절망의 구렁텅이도 뛰어넘을 수 있다. 오늘은 유난히도 바람이 많이 분다. 더 사랑해야한다.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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