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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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 전쟁

2021-06-25 (금) 서병선 뉴욕예술가곡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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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새벽4시, 250대의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은 예고 없는 남침을 개시했다.

우리 집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농가마을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문자 그대로 초가3간 집에서 살았다. 세 아들과 부모님, 다섯식구가 마루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멀리서 따당 따당 어린아이들 딱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온 식구가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저게 무슨 소리지?” 어느 덧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얼마 후 “소대 쏴!”하는 소대장의 명령소리가 떨어지자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덧 군인들이 우리 집 바로 뒷동산에까지 와서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다급해진 식구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건넌방 아궁이 밑으로 피신하기위해 황급히 움직였다. 온 식구들을 다 피신시키고 마지막으로 움직이는 아버지를 향해 “저거 뭐야!”하는 소리와 함께 몇 발의 총성이 울렸으나 총알이 빗나가 아버지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얼마 후 이웃집을 방문하니 울음소리가 진동했다. 이불을 쓰고 피신하던 사람이 총탄에 맞고 목숨을 잃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지혜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구들장이 두꺼운 돌로 만들어져 총탄이 구들장을 뚫을 수 없었기에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치열한 전쟁은 계속되었고 미군 비행기 폭격으로 무고한 양민들이 여기저기서 폭격 당해 죽어가는 비극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얼마 후 외동아들인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고모님이 비행기 폭격으로 딸과 함께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는 이 무서운 동족상잔의 6.25 전쟁을 겪은 지 71년이 되어도 한 혈육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아직도 적대적 대치를 하고 있는 수치스러운 국민임을 부인할 수 없다.

독일도 한때는 동과 서로 갈라진 민족분단의 비극에 처한 때가 있었다. 독일은 17세기에 민네징거(Minnesinger)란 가곡 부르는 단체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시킴으로써 온 국민이 가곡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가곡의 자질인 소박, 정직, 사랑, 지성 등… 문화적 자질이 국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분단 속에서도 서로 싸우지 않고 교류가 지속되었고 평화적 통일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노래와 음악을 들으며 마음에 평화를 갖고 사랑의 마음을 키워갈 때 내 혈육을 살생하는 동족상잔의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300만 명의 주민을 굶겨 죽여가며 미사일을 만들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잔악한 독재자는 다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서병선 뉴욕예술가곡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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