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최고(最古)의 유량악보, 정간보(井間譜)
2021-05-28 (금)
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맞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라.’ 조선 세종대왕이 1443년 창제해 1446년 반포한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우리 고유의 한글, 훈민정음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은 서문에서 하늘과 땅에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글이 있게 되니 남의 말을 빌려서는 서로의 처지가 달라 뜻이 능히 통하지 않기에 우리만의 환경을 깊이 이해하고 날마다 편안히 소통하고자 한다는 그 창제의 뜻을 밝힌다. 우리나라와 민족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한글이다.
한글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고유의 것이라면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우선순위 중 하나는 한국 전통음악이다. 조선 왕조의 근본을 바로 세우고 500년 역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안정된 정치를 편 세종은 한글 창제와 더불어 한국음악사의 발전에서도 큰 업적을 이루었다. 한국음악의 기틀을 마련한 과학예술, 악보의 창안이다. ‘조선의 음악이 비록 완벽하지는 못하나 중국에 비해 부끄러운 것이 없다. 중국의 음악이라고 해서 어찌 모두 바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종실록에는 이처럼 세종의 우리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담겨있다. 중국음악 일색의 궁중음악을 우리의 성음에 맞게 정비하고 개혁하고자 고심하던 세종은 어느 날, 산책하다가 우연히 우물에 비친 달을 보고 우물 정(井) 모양의 악보를 떠올린다. 이리하여 우리만의 독자적인 음악 체계를 정립한 혁신적인 악보, 정간보가 탄생한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직후인 1447년 무렵이다.
정간보의 형태는 우물 정자가 이어진 모양으로 연속된 네모 칸으로 되어있다. 세종이 우물에 비친 달 하나를 본 것처럼 우물 정 안에 서양의 ‘도레미파솔라시도’와 같은 음인 12 율(律)을 넣는다. 12 율은 당시 한국, 중국, 일본에서 쓰던 음계로 정간보에는 ‘황종, 대려, 태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의 앞글자만 악보에 표시한다. 악보에는 가사와 장단, 음높이를 기록할 수 있는데 우물 하나, 즉 정간 하나는 한 박을 뜻하고 정간 두 개는 두 박을 뜻한다. 한 정간을 위아래로 나누어 율명 두 개를 기록하면 반 박이 되는 것처럼 한 정간을 어떻게 나누는지에 따라 다양한 박자를 표시할 수 있다. 원고지 모양을 닮은 정간보는 한 행을 32 정간으로 한 정간 안에 12 율명을 적는 방법으로 기보한다. 구성은 훈민정음의 글자 조합 원리와 같다. 이는 정간보 이전에 창제한 훈민정음에서 얻은 이론적 지식이 바탕이 된 것이다. 3 정간, 2 정간, 3 정간이 모여 8 정간을 이루고 각각은 하늘, 땅, 사람의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한다. 8 정간은 네 개가 모여
32 정간을 이루는데 이 네 개의 8 정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한다. 이처럼 악보에도 동양의 사상과 정신이 구석구석 담겨있는데 음을 나타내는 12 율명 또한 그러하다. 선조들은 음악은 단순한 소리의 조합이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에 좋은 의미를 담아 율명을 만들었다. 12 율은 한 옥타브를 12 반음으로 나눈 것으로 이 12 율을 또 양과 음의 소리로 나누어 6 율, 6 려로 말한다. 각 율은 음력 11월 만물이 싹트기 시작하여 씨를 뿌리는 것을 의미하는 황종부터 12달을 각기 뜻한다.
조선 세종 때 창안된 정간보는 동양 최초이자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유량악보이다. 유량악보란 음의 길이를 기록할 수 있는 악보를 말한다. 음악의 구성요소는 일반적으로 리듬, 선율과 화성의 3요소에 음색과 형식이 더해진다. 이 구성요소를 기록하는 것이 바로 악보인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17세기 이후 확립된 서양음악의 악보인 오선보와 더불어 세계 2대 유량악보로 불린다. 서양 오선보의 초석이 된 네우마(neuma) 기보법이 서기 1000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세종이 정간보를 창안한 시기인 15세기 중반에 완성되었는데 가사 위에 음의 길이와 높낮이를 묘사하는 기호를 간단히 그려 넣는 네우마와는 달리 정간보는 떠는소리인 요성과 밀어 올리는 소리인 추성, 그리고 구르는 소리인 전성 등 음의 높이와 길이를 다양한 장식음과 시김새와 함께 표현한다. 유럽의 오선보가 9세기 네우마에서 시작하여 17세기 초까지 70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다듬어지고 완성된 것에 비한다면 세종 시절 짧은 기간에 창제된 정간보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정간 안에 이처럼 음의 높낮이와 박자, 음의 장식부호와 악기의 주법 등을 표시할 수 있다면 정간의 첫 시작에는 장구 장단을 그려 넣을 수도 있으며, 정간 외부의 빈 곳에는 가사를 적을 수도 있다. 율명으로 음의 높낮이를 구분하여 표기할 수 있는데 옥타브 위의 음에는 삼수변(氵)을 붙이고, 옥타브 아래는 사람인변(亻)을 붙인다. 정간보는 오른쪽 위부터 한 정간씩 위에서 아래로 읽으며 한 정간 안에 여러 음이 있을 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읽는다. 비교적 단순한 악보이지만 한글과도 같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원리로 짧은 시간에 누구나 손쉽게 익히고 읽을 수 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정간보 덕분에 조선의 음악을 보존하여 연주하는 이유이다. 정간보의 등장은 가까운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서도 찾을 수 없는 획기적인 음악사적 업적이며 세종이 작곡한 신악(新樂)을 기록화하여 후대에 남긴 빛나는 위업이자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의 유산이다. 한글과 같은 새로운 글자를 창제하여 백성의 뜻을 펼칠 수 있게 한 것처럼 정간보를 이용하여 백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아름다운 음악 문화의 기반을 다졌다. 판소리나 민요, 산조와 같은 민간에서 발생해 구전되는 민속 음악과 달리 궁중음악은 궁중과 지식층에서 즐기던 음악이기에 악보 없이는 대중에게 전승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만의 독자적이고 과학적인 악보인 정간보가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몇백 년 전의 조선의 궁중음악을 정확히 재현해서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말을 가장 잘 표현한 한글처럼 우리의 소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든 뛰어난 악보, 정간보에 수많은 우리의 전통음악이 지금도 찬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손화영 (가야금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