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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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2021-04-08 (목) 김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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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꽃의 압축파일이다
감 씨를 반으로 따개면
흰 배젖에 감싸여 오뚝 서 있는
고염나무 한 그루
내 아기집 속에 있던 1mm의 아기
초음파 영상 같은
감 씨 속엔
감나무의 숨겨진 전생이 있다
감나무로 성형되기 전
고염나무였다는 DNA
단감을 먹고 씨를 심어보면 안다

김추인 ‘씨앗’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만, 감 씨를 심으면 고염나무가 된다고 한다. 집개가 풀려나면 들개가 되듯 감나무 또한 쉬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감 씨를 세워 어금니 사이에 끼우고 딱 깨물면 두 조각으로 갈라진다. 어린 배가 삽자루처럼 오뚝하다. 저 여린 날로 두터운 흙 천장을 뚫고 나가 늘늘늘 거대한 감나무가 될 것이다. 거대한 감나무는 가을마다 몽몽몽 손톱만한 감 씨로 들어갈 것이다. 생명의 압축파일 만들기와 풀기는 초록지구별에서 누천 년 일어나는 기적이다. 반칠환 [시인]

<김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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