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계해야 할 ‘낙관 편향’

2021-04-07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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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이 찾아오면서 팬데믹으로 인한 미국인들의 불안과 두려움도 조금씩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당국의 방역노력과 국민들의 협조가 결실을 거두면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수와 이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추세는 놀라울 정도다. 지난 1월 하루 4만 명을 훌쩍 넘었던 확진자가 불과 두어 달 지난 지금은 2,000여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추세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당국은 영업제한을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등 주민들과 비즈니스들의 숨통을 틔어주기 위한 조치들을 잇달아 취하고 있다. 삭풍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캘리포니아가 다시 불기 시작한 훈풍으로 모처럼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한결 느긋해진 분위기 속에 언론들의 보도에는 ‘희망’ ‘터널 끝에 보이는 빛’ ‘정상화’ 같은 단어들이 부쩍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보도들에 고무됐는지 “팬데믹은 끝났다”고 성급하게 결론짓는 주민들도 있다. 잔뜩 위축된 채 불안에 시달려 왔을 1년여의 긴 시간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반응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지나친 낙관이 자칫 팬데믹의 종식을 늦춰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경고는 “팬데믹 종식이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전국적인 상황은 다시 나빠지고 있다. 감염자 수가 다시 늘고 있으며 일부 주는 매우 심각하다. 미시건의 경우 지난 2월21일 1,000명으로 떨어졌던 하루 확진자 수가 5,6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긍정적 징후와는 너무 거리가 먼 추세다. 또 120만 명이 2차 백신 접종까지 마친 워싱턴 주에서는 접종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100명 이상이 코로나19에 다시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변이 바이러스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팬데믹이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란 믿음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희망의 메신저는 백신이다. 하루 300만 명 이상이 접종을 받으면서 접종률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집단면역이 완전히 형성될 정도(80%)까지 접종이 이뤄지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어정쩡한 수준의 접종률은 접종률이 아주 낮을 때보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백신접종을 받으면 자신은 안전해졌다는 안도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접종을 끝낸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전파자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전문가들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접종을 끝냈더라도 계속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잘 지켜야 하는 이유다.

인간에게는 위험과 관련된 상황에서 자신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다른 사람들보다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자신이 폐암으로 죽을 확률이 다른 흡연자들보다 적다고 여긴다.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미국인 1,145명을 대상으로 3단계에 걸쳐 실시된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의 절대 다수는 자신이 팬데믹의 희생자가 될 확률을 다른 사람들보다 상당히 낮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나빴던 상황이 조금 나아지는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성급하게 낙관에 빠져 버리곤 한다. ‘낙관 편향’이 작동하는 것이다. 낙관에는 분명 긍정적인 힘이 있다. 장기적 번영에는 낙관이 더 유효한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불확실한 위기 상황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이다.

며칠 전 연방질병통제국장은 올 겨울 또 한 차례 코로나19가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질병통제국장은 ‘임박한 종말’(impending doom)이라는 섬뜩한 단어까지 사용했다. 한 순간도 방심하거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어법이었다.

우리 개개인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주들보다 상황이 크게 호전된 캘리포니아도 진공 상태 속에 홀로 놓여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모두가 안전해지기 전까지는 결코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낙관 편향’이 도를 넘은 텍사스 같은 곳은 마스크 착용에서부터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규제를 푸는 조치를 취했다.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는 홈 개막전을 4만 관중으로 꽉 채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구단의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무모한 ‘낙관 편향’, 그리고 스프링브레이크와 부활절 등으로 부쩍 늘어난 인적 이동이 향후 어떤 추세로 이어지게 될지 당국과 전문가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얻고 쌓기는 힘들어도 잃고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의 일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아직은 글로브를 벨트 아래로 내려뜨린 채 느슨하게 바이러스와 맞설 때가 아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는 비단 야구에만 적용되는 금언이 아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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