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데릭 쇼빈, 그 경찰

2021-04-06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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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네소타 주 헤너핀 카운티 법원에서는 ‘세기의 재판’이 열리고 있다. 작년 5월25일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8분46초간 무릎으로 눌러 숨지게 한 전직 미니애폴리스 경찰관 데릭 쇼빈(Derek Michael Chauvin)에 대한 2급살인, 2급 우발적 살인, 3급살인 혐의의 재판이다.

지난 주 증인신문이 시작된 이 재판은 총 4주간 진행될 예정이고, 최종평결을 내릴 배심원 심의는 이달 말에서 5월초 시작된다. 배심원으로 선정된 사람은 총 14명인데(2명은 보결배심원) 백인여성 4명과 백인남성 2명, 흑인남성 3명과 흑인여성 1명, 복합인종(multiracial) 여성 2명이다. 도심과 교외지역에서 고루 선정됐으며 연령대는 20대에서 60대까지 아우른다.

또 다른 ‘세기의 재판’이었던 로드니 킹 재판의 배심원단이 백인 10명, 히스패닉 1명, 아시안 1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훨씬 인종적으로 다양하고 공정해 보인다. 1992년 4월29일, 로드니 킹을 개 패듯이 팬 4명의 백인 경찰관에게 배심원단이 ‘정당방위’라는 무죄평결을 내린 후 일어난 폭동에 대해서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데릭 쇼빈 재판은 TV로 생중계되지만 배심원단은 안전을 위해 화면에서 보호되고 익명이 유지된다. 또 법정 주변은 소요사태에 대비해 콘크리트벽과 펜스, 철조망으로 경비가 강화됐다. 이 재판의 담당검사는 제리 블랙웰, 피고측 변호사는 에릭 넬슨이고, 핵심 사안은 조지 플로이드의 ‘사인’이 될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예상대로 재판 첫날 넬슨 변호사는 “쇼빈은 19년 경찰 재직기간에 걸쳐 훈련받은 대로 했고, 조지 플로이드는 고혈압, 심장질환, 그리고 그가 복용한 메탐페타민과 펜타닐 때문에 발생한 심부정맥으로 숨졌다”고 주장했다.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이야기다. 지구촌에서 두 눈을 가진 사람은 모두 조지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고 27번이나 내뱉으며 숨져간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당시 검시관의 정밀 부검결과도 “경찰의 제압, 구속, 목 압박에 의해 심폐정지에 이른 살인”이라고 결론지었다.

피고인 데릭 쇼빈(45)은 사건 이튿날, 미니애폴리스 경찰국에서 해고됐고, 사흘 후 2급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그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경찰 3명도 해고됐고, 모두 2급살인 공모혐의로 체포돼 오는 8월 재판을 앞두고 있다. 쇼빈에게는 125만달러의 보석금이 책정됐는데 작년 10월초 조건부로 100만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냉혈한’ 얼굴을 가진 데릭 쇼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로컬 언론들과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그는 평소 말이 없고 융통성도 없는 워커홀릭이었다. 동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함께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친구도 거의 없고 파티에 가는 일도 없었다.

다만 그는 ‘액션’을 좋아했고 언제나 ‘과격했다’고 주변에서는 전한다. 그의 경찰연한이면 대개 사무직이나 낮 근무로 돌아서는데, 쇼빈은 다들 기피하는 오후 4시~새벽 2시대의 순찰을 계속했고, 그런 열심 때문인지 2개의 무공훈장도 수여했다. 그러나 그의 ‘공격성’은 내사과에 22개의 민원신고를 낳았다. 같은 기간 다른 경찰들에 대한 신고가 1~2개에 그치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많은 수치다. 그중 하나는 2017년 14세 소년을 무릎으로 눌러 의식을 잃게 한 것도 있는데, 이번 재판에서는 검찰 측 자료로 채택되지 않았다.

쇼빈의 어린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7세 때 부모가 이혼하자 5년 동안 4개 초등학교를 전전했다. 고교졸업을 못했으나 검정고시로 기술학교에 입학, 요리자격증을 취득해 한때 맥도널드에서 일한 적이 있다. 96년부터 8년 동안 육군예비군으로 복무했고, 메트로폴리탄 주립대학에서 법집행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군경에 입대해 독일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2001년 미니애폴리스 경찰국에 입사한 직후부터 해고될 때까지 쇼빈은 주말마다 시간당 55달러의 나이트클럽 경비를 섰다. 한때 조지 플로이드와 같은 나이트클럽 경비로 일했던 적이 있으나 시간대가 달라서 두 사람이 만난 적은 없어 보인다고 한다.


그의 아내 켈리 쇼빈은 라오스에서 건너온 몽(Hmong)족 난민 출신이다. 그녀는 17세에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으나 10년 후 이혼했고, 방사선 테크니션으로 일하던 중 쇼빈을 만나 2010년 결혼했다. 그 후 병원을 떠나 부동산 에이전트가 된 그녀는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로, 2019년 ‘미시즈 미네소타’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고, 이들 부부는 몇 채의 부동산과 BMW 자동차, 쇼빈의 과외수입에 대한 탈세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그리고 켈리 쇼빈은 남편이 체포되자마자 안전과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해 완료됐다.

지난 한 주간 재판 대에 오른 증인은 19명, 거의 모두 눈물을 터트리며 실제 목격한 그날의 끔찍한 장면을 회상했다. 플로이드의 위조지폐 사용을 처음 신고한 편의점 직원으로부터 플로이드의 애인, 쇼빈의 동료경찰, 영상을 촬영한 17세 소녀, 911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요원에 이르기까지, 그날의 충격과 트라우마로 지난 10개월 내내 괴로웠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은 ‘공권력을 가진 제복 입은 백인’이 ‘저항 불가능한 무력한 흑인’을 죄의식 없이 살해한, ‘비인간성’이 낳은 끔찍한 범죄다. 배심원단이 정의로운 평결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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