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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젊고 예쁜 우울증 환자

2021-03-10 (수)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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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젊고 예쁜 여자환자를 만나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런 환자가 임신이 되어 찾아오면 덜컥 겁이 난다.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게 희망사항이다. 틀림없이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을 끊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계속 복용해야할지를 묻는 뜨거운 감자 환자(곤란한 환자)로 변하기 때문이다.

임신 중의 항우울제 복용과 기형아 출산 위험은 정신과 의사들이 임상진료에서 빈번히 부딪치지만 피해갈 수 없는 고민스러운 문제다.

우울증은 아주 흔한 질병이다. 인생 여정의 어느 선상에서 병을 얻을 확률이 약 10-15% 쯤 된다. 원인이 심리적, 환경적, 신체적이든 또는 치매성이든 성별, 인종, 나이 불문하고 누구든 걸릴 찬스가 항상 열려있다.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두 배나 걸릴 확률이 높다.


여성은 임신을 하면 모성애란 특별한 힘이 우울증을 극복하게 한다는 통념 때문에 임신 중에는 우울증에 걸리지도 않고 치료도 필요 없다고 여겨졌었다. 하지만 많은 설문조사와 연구결과를 보면 임신 중의 호르몬 불균형, 외부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오히려 더 생길 수 있고 기존의 우울 증세도 악화한다.

임신 중의 항우울제 복용이 기형아 출산 위험을 높일까? 최근 보스턴 지역에서 임신 3개월 전에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 항우울제(Zolof, prozac, paxil, celexa 등)를 복용한 산모 1만 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이들이 출산한 아기 중 두개골 결함, 상하지 결손, 심장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들의 수는 이런 약을 복용하지 않은 산모의 기형아 출산 수와 별 차이가 없음이 드러났다. 결론은 임신 초기의 항우울제 복용으로 인한 기형아 출산 위험은 존재하되 아주 미미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연구팀도 임신 초기(임신 한 달 전부터 임신 후 3개월) 여성의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 항우울제 복용과 신생 기형아 수치를 관찰했다. 두뇌 결함은 115명 중 2, 손발 결손은 127명 중 3, 심장 결함도 비슷한 수로 나왔다.

임신부의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복용으로 인한 기형아 분만 위험에 대해 수많은 연구논문이 있지만 아직까지 그 어느 것도 확실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정신의학 경향은 앞의 두 연구결과에서 보듯 기형아 분만 확률이 낮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발표를 믿는 추세다. 단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 항우울제 중 Paxil이란 약은 예외다. 최근 미 식품의약국은 Paxil이 기형아 출산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한 바 있다.

임신 중의 우울증상과 항우울제 사용은 태아와 신생아, 임신부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임신 중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는 여성은 매사가 귀찮아 임신 관리에 소홀하여 오심, 구토, 염증 등 신체적 합병증을 경험한다. 또 술 담배 마약 사용, 정신질환 악화로 인해 태아발육의 변화와 임신기간의 단축과 관계가 있다. 이런 여성이 분만한 아이는 보통 과민반응, 주의력 결핍, 체중저하, 정서적 무표정을 보여준다.

우울증 초기에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복용하면 드물게 기형아 분만 위험이 따르고, 임신 후반기 복용은 일시적으로 신생아의 정서적 환경적 과민반응을 초래하며 아주 드물게는 신생아의 폐 압력을 높여주는 경향 때문에 세심한 관찰을 요한다. 이러한 의학적 문제로 몇 년 전 미 산부인과 협회와 정신과 협회는 공동으로 다음과 같은 권장안을 마련했다.

첫째, 6개월 이상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 여성이 임신을 계획하면 의사 지침 아래 복용약을 점차 줄이다가 최소 한달 전에 끊는다. 둘째, 임신 중 우울증세가 그리 심하지 않으면 약을 천천히 중단하고 심리요법과 대체요법을 사용한다. 셋째, 임신증세가 심하거나, 반복적으로 나타나거나, 정신증세(현실 파악능력 결핍), 자살위험, 양극성 장애(조울증)로 인한 우울증을 수반하는 경우는 약을 중단하지 말고 산부인과 의사와 정신과 의사의 긴밀한 협조 하에 환자를 치료한다.

임신은 자신 만의 문제가 아닌 앞으로 태어날 한 인간과의 공동체 관계다. 항우울제를 먹고 있는 여성이 임신을 준비 중이거나 임신 중이면 혼자 결정하지 말고 전문가와 의논해야 한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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