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도(哀悼)

2021-03-06 (토)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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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버스만큼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밀려오는 파도를 맞으며 해안가에 누워 있다. 2021년 2월 18일, ‘피봇Pivot’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열다섯 살난 혹등고래가 메릴랜드 아세티크 섬 해안가에 죽은 채 발견되었다. 아세티크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 여름철이면 캠핑을 하러 가곤 했던 추억 어린 장소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끼룩끼룩 불협화음에 잠이 깨면 텐트 창을 통해 야생말이나 사슴과 눈이 마주치곤 했던 곳이다. 출렁이는 파란 물결과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야생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 하던 그 부드러운 모래사장에 생을 다한 고래가 겨울 바다의 물결 위에 누워 있었다.

뉴스는 명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2016년 1월 이후로 혹등고래 146 마리가 이처럼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언젠가 오줌에 포함된 질소가 환경파괴의 주원인이라고 한 것이 생각난다. 화학제품을 통해 세척과정을 거친 후에도 여전히 물에 남은 과잉 질소는 조류와 수생 식물의 성장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식물이 분해됨에 따라 물속의 필요한 산소 공급을 고갈 시켜 수생동물을 죽이고 생태계 순환을 파괴하는 것이다. 해마다 150만 미터톤의 질소가 미시시피강을 통해 걸프만으로 흘러와 여름이면 뉴저지 사이즈의 ‘데드 존 (Dead zone)’을 만든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불교 신자셨던 할머니는 “네가 이생에서 버리는 모든 것을 다음 생에서 모두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날마다 온종일 집에 갇혀 지내는 요즘 수세식 변기를 누를 때마다 할머니 음성이 떠오르곤 한다. 하루 평균 한 사람의 오물이 4~500 그램이고 수세식 변기로 한 번에 나가는 물이 최소 1.6갤런이다. 내가 소식을 하여 최소한의 오물만 분비하고 80년을 산다고 해도 한평생 13톤의 오물을 세상에 남기는 셈인데 이는 거대한 성인 수코끼리 두 마리만 한 것이다.


내 삶에서 내가 이 세상에 내버려 오염이 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찾다가 바이오가스 정화 시스템 (Biogas Septic System)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변기로 물에 흘려보내는 오물과 음식물 등 모든 생분해성(biodegradable) 쓰레기를 모아 가스로 전환해 대체에너지로 씀과 동시에 액체는 비료로 만들어진다니 환경을 위한 일석삼조가 아닌가.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 꽤 보급이 된 듯하고, 이스라엘에서 창업한 홈바이오가스 회사는 이 시스템과 변기를 연결해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았다. 중국 알리바바 사이트에는 비슷한 시스템과 바이오가스용 전구, 스토브 등등 다양한 관련 제품도 나와 있었다.

홈바이오가스 회사 웹사이트에 미국으로 운송한다는 광고를 보고 연락을 했다. 많은 질문을 여러 차례 이메일로 주고받다가 결국 마지막 질문의 답에 포기하게 되었다. 시스템을 설치한 후 가스를 생성하기 위한 초기화 작업으로 소, 말과 같은 초식동물의 변 25갤런(약 100kg)과 물을 넣어 1~3주간 기다려야 한다. 도시에 살아서 동물이라고는 집에서 함께 사는 개와 고양이 외엔 동네에 간혹 나타나는 여우와 날아다니는 새가 전부인데 어디 가서 초식동물의 변 100kg을 가져온단 말인가?!

무언가를 해야만 하겠기에 바이오가스 정화시스템처럼 일석삼조는 못되고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퇴비용 변기 (composting toilet)를 시도하려 찾아보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퇴비용 변기는 워낙 많은 데다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것은 소변과 대변을 분리하지 않는 그저 간이식 변기에 지나지 않고 분리가 되는 것들은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인터넷의 바다를 뒤져 결국 적정한 가격에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퇴비용 변기를 찾았다. 변기를 주문한 후 대변을 퇴비화하는데 필요한 코코야자 껍질(coco coir)과 대변을 담는 생분해성 쓰레기 봉지도 주문했다. 소변으로 자연비료액을 만드는 법, 퇴비용 변기 사용에 따른 냄새 제거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한 글도 찾아 읽었다.

피봇의 사진이 자꾸만 떠올랐다. 피봇은 어쩌면 아이들과 함께 탄성을 지르며 해안가에서 보았던 고래 중 하나였을 지도 모르겠다. 눈부신 망망대해에 그 거대한 몸이 솟구쳐올랐다가 다시 물을 가르며 빠르게 전진하던 고래의 모습.

밤새도록 겨울비가 내렸다. 우리가 물에 쓸려 보낸 오물로 인해 수명의 삼 분의 일밖에 못 살고 생을 마감한 피봇과 다른 모든 죽어가는 생명을 애도함일까?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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