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흐르는 강물처럼

2021-02-27 (토)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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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애~ 우후! 올라선 저울 위에서 나는 오른팔을 위로 뻗으며 환호한다.

어젯밤 저녁식사로 전날 먹다 살을 발라 냉장고에 넣어 뒀던 코스코 통닭 조금과 전자렌지에 2분 돌려 듬성 썰은 야채맛 소시지 1개를 요즘 한국산 라면의 공세에 엄청 시달리고 있다는 일본산 작은 컵라면 1개와 함께 간단히 때우고는 소주잔에 부은 1잔의 보드카를 위에다 원샷으로 털어 넣고 잠을 청하며 예감했던 대로다. 밥과 국수 같은 탄수화물을 며칠째 원수 보듯 멀리하며 소식했더니 하룻밤새 2파운드가 더 줄은 것이다.

해방 후 25세 때인 1946년 일본서 귀국해 고향인 울산에서 마필 관리 같은 허드렛일을 하다 얼마 안 있어 부산에서 시모노세키행 밀항선을 타고 다시 도일, 동경 신주쿠에서 바닥부터 고생하면서도 틈틈이 문학작품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던 중 독일의 세계적인 대 문호 괴테의 고전 명작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의 아름다운 여 주인공에 매료됐다는 고 신격호 회장. 그가 타계한지도 꼭 1년이 됐다. 그는 27세이던 1948년, 그녀의 이름을 따 ‘롯데’라는 이채로운 이름으로 껌 사업을 하는 제과업체를 동경에서 창업하여 형제들과 함께 오늘날 한일 양국에 걸친 롯데?농심 등의 대 그룹으로 키워냈는데, 서울 올림픽이 열린 해인 1988년엔 한국인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인 포브스 선정 세계 4위의 대 부호로 랭크된 적도 있다니 새삼 놀라울 뿐이다. 그는 문학청년의 순수감성을 지니고서도 일세를 풍미한 발군의 기업인이었다. 그와 동시대에 일본에서 자수성가한 전설적인 대만인으로는 2007년 작고한 고 안도 모모후쿠(오백복吳百福) 회장이 있다. 1958년, 48세때인 그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 라멘’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라면회사가 바로 요즘 한국라면 업체들의 등쌀에 시달린다는 니씬(NISSIN) 이다. 젊어서 하도 여러 번 실패를 겪으며 고생했다는 모모후쿠 회장이 얼마나 대단한 집념의 사나이 였는지는 ‘넘어지더라도 절대 빈손으로는 안 일어난다. 흙이라도 한줌 쥐고 일어난다’ 는 그의 유명한 일화가 잘 말해준다. 성공한 기업가들이 그런 투지 없이 우연히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다.


갓 구워 내 뜨겁기까지 한 코스코 통닭은 초록의 하이네켄 병맥주와 곁들일 때 얼마나 더 맛있는지 모른다. 코스코 통닭에 딱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북녘 동포들이 들으면 말 그대로 ‘배부른’ 소리가 되겠지만, 앉은 자리에서 독신들이 홀로 먹기엔 양이 너무 많다는 거다. 오늘 아침 샤워 후 실 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올라선 저울의 디지털 계기판이 마의 214를 아슬아슬 깨면서 파란색 숫자가 명멸하더니 213.8 파운드를 찍은 것이다. 4파운드만 더 빼면 보름새 총 12파운드를 줄여 날씬했던 10년전 체중으로 돌아가는 거다. 1978년 1월, 명륜동 모교의 비원 뒤편 산비탈에 위치한 종합 운동장의 관중석 벽에 붙여 논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 만큼이나 신이 난 나는 새로 산 S사의 최신 5G폰으로 얼른 찍어서 페이스북에 동네방네 자랑질 포스팅을 올려놓고는 구글 본사 캠퍼스 옆 ‘쇼얼라인 레이크’ 의 트레일 헤드로 차를 몬다. 위도상 훨씬 남쪽인 텍사스의 주민들이 한파로 죽을 고생을 했다는 보도에 웬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새털 구름이 은은하게 깔린 온화한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만사천보 아침 산책의 첫발을 힘차게 내 딛는다.

혹독한 겨울은 이렇게 끝나가고 우기에 비를 흠뻑 맞은 들판은 파릇파릇 풀이 돋아 온통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코로나로 50만명이 넘는 엄청난 인명이 누적 희생된 암울한 겨울도 예방접종을 맞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주변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봄이 동구밖까지 다가 오면서 이윽고 기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고 있다. 아무리 힘들다 해도 희망이라는 종이배를 태운 세월이라는 도도한 강물은 이 구비 저 구비를 돌면서 유유히 흘러간다.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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