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두꺼비가 된 코끼리

2021-02-16 (화) 민경훈 논설위원
크게 작게
미국의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은 당나귀와 코끼리를 마스코트로 쓰고 있다. 민주당이 당나귀를 심볼로 삼은 것은 1828년 대선 때부터라 전해진다. 당시 민주당 후보인 앤드루 잭슨을 반대하는 쪽에서 그를 ‘jackass’(당나귀, 멍청이라는 뜻이 있음)라고 부르자 잭슨은 분노하기보다 오히려를 당나귀를 자기 선거 포스터에 썼다. 그 후 1870년대 들어 유명 만화가인 토머스 내스트가 이를 민주당 전체를 상징하는 동물로 사용하면서 당나귀는 민주당의 심볼로 자리를 굳혔다.

공화당의 상징이 코끼리가 된 것은 1860년대 남북전쟁 이후로 본다. 이 때 군인들이 “전투를 하러 간다”는 뜻으로 “코끼리를 보러 간다”고 말했는데 이것을 계기로 코끼리를 공화당의 상징으로 쓴 만화가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이것이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역시 만화가 내스트의 공이 크다.

반면 영어권에서 두꺼비(toad)는 겁쟁이와 아부꾼의 상징이다. 두꺼비가 겁이 많고 아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깡패 두목이 부하들이 얼마나 비굴해질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보기에도 징그러운 두꺼비를 삼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보스의 말이라면 두꺼비도 삼키는 부하에게는 ‘toady’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비굴할 정도의 아부’를 영어로 ‘toadyism’이라고 부른다.


지난 주말 연방 상원은 예상대로 트럼프 탄핵 안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연방 상원 재적 의원의 2/3인 67명이 유죄에 표를 던져야 하는데 공화당이 50명인 점을 감안할 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방 의회의 탄핵 과정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 것은 지난 1월 6일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이 트럼프의 지시 하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대선이 있기 전부터 자기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경우 이는 부정 때문이라는 점을 수없이 반복해 주장했고 선거에서 진 후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대대적인 부정이 저질러졌다며 “절도를 막아라”(Stop the Steal)를 외치면서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1월 6일 당일에도 그는 “사기꾼을 잡을 때는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며 난폭해야 하고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부추겼다. 폭도들이 의사당에 난입해 “마이크 펜스를 교수형에!” “낸시(펠로시 하원의장)는 어디 있느냐”를 외치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케빈 맥카시 연방 하원 공화당 원내 총무가 트럼프에게 전화해 제발 폭도들을 만류해달라고 사정했을 때도 “너보다 더 선거 결과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난장판이 끝난 후에도 트럼프는 폭도들을 “특별한 사람들”이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말할 것 없고 같은 공화당 의원들의 생명을 위협한 폭도들을 감싼 트럼프에게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이 무죄를 평결했다는 것은 지금 공화당이 어떤 상태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트럼프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은 7,400만 표가 두려운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1/6 사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상원에 앞서 열린 하원 표결에서 자신 포함 10명의 공화당원과 함께 트럼프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리즈 체이니 연방 하원 의원(와이오밍)은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해 하원 공화당 회의 의장직에서 쫓겨날 뻔 하다 살아났지만 고향인 와이오밍 공화당으로부터는 배신자로 찍혀 견책 처분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50명의 공화당 연방 상원 의원 대부분이 무죄 평결을 내렸다는 것보다 7명이 탄핵에 찬성했다는 사실이 더 눈길을 끈다. 1차 탄핵 때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미트 롬니(유타)를 비롯 리처드 버(노스 캐롤라이나), 빌 캐시디(루이지애나), 수전 콜린스(메인), 리사 머코우스키(알래스카), 벤 새스(네브라스카), 팻 투미(펜실베니아)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이름은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1차 때보다 6명이 늘어났다는 것이 진전이라면 진전이다.

지금 공화당은 이들과 연방 하원에서 탄핵에 찬성한 리즈 체이니, 팀 라이스(사우스 캐롤라이나), 댄 뉴하우스(워싱턴), 애덤 킨징어(일리노이), 앤소니 곤잘레스(오하이오), 프레드 업튼(미시건), 헤레러 버틀러(워싱턴), 피터 메이저(미시건), 존 캐트코(뉴욕), 데이빗 밸라다오(가주) 그룹과 트럼프의 눈치를 보며 설설 기는 나머지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공화당과 미국의 장래를 위해 어느 그룹이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지는 자명하지만 당내 싸움에서 탄핵파가 이길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당분간 공화당은 당의 상징으로 코끼리 대신 두꺼비를 쓰는 편이 적절하다고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