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이사장은“중소기업이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으면 신속히 자금을 지원하고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면 전문 컨설팅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중진공의 핵심 역할”이라고 말했다[사진=이호재 기자]
김학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소·벤처기업들이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다. 국내외 판로가 막혀 일감이 사라져 벼랑 끝에 내몰린 한계 기업이 있는가 하면 코로나19를 기회로 활용해 성장하는 기업도 있다. 국내 663만여 개 중소·벤처기업 지원을 전담하고 있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고민이 커지는 이유다. 재해 수준의 타격을 입은 중소기업에 신속한 지원을 해야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번 기회에 ‘좀비 기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균형점을 잡기가 여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김학도 중진공 이사장이 중책을 맡았다. 중소벤처기업부 설립 이전에 중소기업 정책을 전담해온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정책을 들여다봤다면 이제는 중진공에서 현장 실무를 담당하며 잡음을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5월 취임한 그는 현장 곳곳을 누비며 현실적인 해법 마련에 나섰다. 산업부의‘입’ 역할을 해온 대변인 출신 답게 그의 메시지는 명쾌하면서도 단호했다.
<대담=김홍길 성장기업부장>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면 국가를 먹여 살릴 혁신 기업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김 이사장은 지난 5일 서울 양천구 목동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이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가 전략을 강조하지만 제조업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제조업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시련을 겪고 있다. 내수 기업은 물론 수출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김 이사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선진국의 제조업 비중이 10% 내외인데 우리나라는 27.8%로 높다”며 “일부에서는 (코로나19로) 도태되는 중소기업을 구조 조정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성급한 결론”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정통 제조업들이 그동안의 축적된 기술을 토대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정부가 ‘넛지(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으로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의미)’해주면 혁신 기업으로 성장해 부가가치를 올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일시적인 자금난이나 기존 산업의 부진으로 동반 부진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기존의 축적된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긴급 자금 지원이나 사업 전환을 위한 컨설팅 등의 ‘넛지’ 전략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중진공은 코로나19로 단기 유동성 위기에 처한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당초 예산의 13배인 1조 3,000억 원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했다. ‘묻지 마 지원’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김 이사장은 “코로나19에 따른 불가피한 수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신 김 이사장은 작은 논란이라도 없애기 위해 중진공이 지원하고 있는 6만여 개 기업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춰놓고 구조적인 부실에 직면해 있다고 판단되면 사업 구조를 개선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돕는다.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앞으로 어떻게 경쟁력을 갖춰나갈 것인지를 컨설팅을 통해 해법을 찾아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연 자동차 부품 중소기업의 경우 기존의 기술을 활용해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등의 부품 회사로 남을 수 있도록 기술 이전을 중매해주거나 설비투자를 지원해 축적된 기술이 버려지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중진공이 정부의 정책 자금을 ‘전달’만 하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의 사업 재편까지 고민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김 이사장은 중진공의 행정 서비스를 민간 수준으로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 이사장 자신이 취임과 동시에 전국 현장을 돌며 애로 사항을 듣고 정책에 바로 반영하는 식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책상에 앉아 서류만 처리하는 중진공은 앞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중소기업이 무엇이 어려운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중진공이 찾아가 자금의 어려움이나 사업 구조 재편 과정의 애로 사항을 풀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중진공이 앞장서 ‘적극 행정’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실제 중진공은 인공지능(AI) 기반 비대면 기업 진단 ‘케이닥터(K-DOCTOR)’를 통해 기업 스스로 경영 현황을 진단하고 필요한 정책 자금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뿐만 아니라 선제적 자율 구조 개선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에 경영이 개선되도록 돕고 있다. IBK기업은행과 협력해 지난해 시범 사업으로 15개 사에 55억 원을 지원해 재도약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한다. 올해는 예산 규모를 250억 원으로 증액하고 대상 기업도 50개 사로 확대할 예정이다.
김 이사장은 “전국 32개 지역 본부에서 지원하고 있는 6만 개 중소기업의 최신 경영 데이터를 파악해 단기 유동성 지원, 기술 지도, 사업 전환 등 필요로 하는 지원을 컨설팅하고 있다”며 “(케이닥터는) 응급실에 실려오기 전에 병명을 미리 진단하고 영양제나 보충제를 처방해주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병(파산)으로 번지기 전에 미리 대비해 일자리를 유지하도록 하면서 사업 재편을 동시에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지방 중소기업 일자리는 지역 경제의 기반이기 때문에 지난해 주문이 없어 적자를 보더라도 고용을 유지하는 곳이 많았다”며 “바로 그런 기업들이 애국을 하는 것이고 중진공은 그런 기업들이 사라지지 않고 일자리를 지키면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장 매출은 일어나지 않지만 기술력이 있고 성장 가능성이 큰 혁신 기업에 미래 가치를 산정해 정책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김 이사장의 적극 행정 노력의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패션 업계와의 현장 간담회를 통해 정책 자금을 지원할 때 대기업 원청 업체가 인정하는 납품 계약만 있으면 지원을 우대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김 이사장이 적극 행정으로 ‘운용의 묘’를 살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동안 패션 업계는 원청의 주문이 매출로 인정되지 않아 정책 자금을 지원받기가 어려워 원재료 구입을 위한 자금 마련에 애를 먹어왔다. 지금까지 애로를 호소했지만 ‘규정’에 걸려 번번이 해결이 어려웠다. 그러다 김 이사장의 묘안으로 한방에 해결됐다. 김 이사장이 취임과 동시에 현장을 둘러보며 애로 사항을 듣다가 묘안을 낸 게 주효한 것이다. 그 결과 반 년 만에 12개 업체가 46억 원의 정책 자금을 지원받아 수주 물량을 확대하는 등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취임과 함께 “유망 기업을 가장 먼저 알아봐주는 중진공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1년도 안 돼 현실에서 체감할 정도로 가시화됐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김 이사장은 “생각만 살짝 바꿔보면 기업들의 애로를 해소하는 길이 열리는데 그동안에는 그런 노력을 소홀히 해온 게 아니냐는 반성을 해본다”며 “앞으로는 이런 기업들의 애로가 점점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적극 행정의 전도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김 이사장 취임 이후 중진공에 정책 자금을 신청한 기업이 지역 본부 심사에서 탈락하더라도 본부에서 기업설명회(IR)를 통해 재평가받을 기회를 주고 있다. 김 이사장은 “수많은 진단 키트 개발 스타트업들이 누적 적자에 허덕였지만 결국에는 코로나19로 세계적인 기업이 되지 않았느냐”며 “당장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해도 기술력만 있으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재무뿐만 아니라 비재무 평가에도 공을 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빅데이터 기반 AI 평가 모형을 기업 평가에 적극 활용해 성장 단계마다 지원이 끊이지 않게 이어달리기식으로 지원을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술력만 있으면 ‘데스밸리’ 없이 성장이 가능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정부의 정책을 주도하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게 많다 보니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잇따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이사장은 “현장에서 바로 정부에 건의하면 반영이 어렵고 정책도 바로 현장에 적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중진공이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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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이재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