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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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가 얄미울 때

2021-02-06 (토)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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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새로운 생명을 낳았다. 손녀인데 이 세상에 나올 때 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겪었다. 딸이 한 번 유산을 한 충격이 있는데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의 위험한 때 임신을 하여 조심하고 지냈는데 초음파에서 전치태반으로 밝혀져 더욱 마음을 졸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태반의 위치가 매우 좋지 않아 갑자기 출혈이 되면 태아와 산모 모두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임신 중반기에서 후반기로 갈 때 혹 태반의 위치가 조금 안정된 곳으로 움직이길 바랐지만 오히려 탯줄이 위험하게 되어 간다는 소식에 가슴이 덜컹 주저앉았다.

절대 안정만이 치료였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 살살 조심스럽게 일하다가 32주 겨우 넘겨서는 병원에 입원하여 응급상황에 대비하여야 했다. 태반이나 탯줄이 떨어져서 위험해 지면 바로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서 병원에 갈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 나는 매일을 기도하면서 지냈는데 태아와 산모가 걱정되어 종종 잠에서 벌떡 깨어나곤 하였다. 그렇게 3주 동안을 병원에서 절대 안정을 하다가 35주가 되어 어렵게 제왕 절개로 손녀를 출산했다.

자식이 성장해서 결혼하고 때가 되면 당연히 자식을 낳고 잘 크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아이 낳는 것이 힘들어서야 세상에 어떻게 애 낳고 키우겠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나와 아내가 결혼해서 딸을 날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내가 임신을 하고 힘들게 지내고 있었는데, 나는 바쁜 수련의 과정을 보내며 나 자신의 일에만 몰두 하느라 아내를 별로 돌봐주지 못하였다. 그러다 산통이 시작되어 헐레벌떡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딸아이는 36시간 이상 끌면서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전날 당직하느라 밤을 꼬박 새워 분만실 옆에서 기다리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간호사가 깨워 일어나보니, 아이가 안 나오니 제왕절개 수술을 고려해야겠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아내는 36시간 동안 죽도록 고생은 다하고 이제 와서 수술한다는 것이 억울하다며 화를 내었다. 담당 의사는 아내에게 억울하면 젖 먹던 힘까지 써서 아이를 밀어보라고 하였다.

아내는 기를 쓰고 힘을 주어 결국 딸아이를 분만하였다. 나는 우왕좌왕하며 아내 옆에 있느라 한국에서 오셔서 집에서 딸의 분만 소식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시는 장모님께 연락도 깜빡 잊고 있었다. 핸드폰도 없던 때이기는 했지만 집으로 중간 중간에 연락을 드릴 생각을 못하였다. 장모님은 온갖 불길한 생각으로 두 밤을 지새우시면서 마음을 졸이셨다고 나중에 말씀하셨다. 태아도 그렇지만 딸자식의 생명이 얼마나 걱정이 되셨을까?

손녀가 아무리 예쁘다지만 딸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몇 년 전에 형님 집에 조카들과 친척들이 모인 적이 있었다. 모두 즐겁게 식사도 하고 놀기도 하는데 조카딸의 아들 갈렙이 자꾸 칭얼대면서 조카딸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조카딸은 아들 녀석 때문에 식사도 편하게 못하고, 공원에 같이 가서도 꽤 큰 갈렙이는 엄마한테 업어 달라고 하면서 계속 힘들게 하였다. 보다 못한 형님이 손자를 안고 걸어갔는데 또 다시 떼를 쓰며 몸부림을 치자 형님이 갈렙을 번쩍 들어 공원 내 큰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옆에 있던 우리 모두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고 갈렙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형님이 왜 저런 장난을 치나 하고 생각 했었는데 이번에 딸내미가 고생하는 것을 보니 손자가 밉살스러웠을 형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자식을 키워 결혼 시키고 손녀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부모님들의 마음과 자식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더 깊어간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그 사랑의 흐름 때문에 우리의 역사가 이어지며 살만한 세상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새 생명의 탄생은 인간이 다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고 감사한 사건이다. 할아버지는 새 생명이 살아가야할 인생길이 너무 어렵지 않기를, 또 손녀가 잘 자라서 부모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며 이웃에게 많은 위로와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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