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되면서 중요해 진 숫자가 하나 있다. 바로 체온이다. 적정 수치 이상이 나오면 출근할 수 없거나, 출입이 금지된다. 다시 야외 영업이 허용된 식당을 가도 불쑥 이마에 딱총 같은 체온계를 갖다 댄다.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도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장기 질환자(long-hauler)들에 따르면 코비드-19의 증상은 98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목이 아픈 것은 물론, 팔다리가 쑤시거나 배가 아파도 코로나 때문일 수 있다. 복통 때문에 응급실에 가도 코로나 검사부터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침이라고 늘 상쾌한 기분은 아니지 않은가.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찌부득하면 혹시, 하며 이마에 손부터 갖다 댄다. 열이 없다고 코로나가 아닌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마가 뜨겁지 않아야 우선 안심이 된다.
지금은 화씨 98.6도(섭씨 37도)가 정상 체온으로 통용되고 있다. 150여년 전에 나온 수치다. 독일의 한 내과의사가 라이프찌히 주민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숫자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측정된 정상 체온은 이보다 낮다.
지난해 북가주 팔로 알토에서 수 십만명의 체온을 재본 결과 건강한 사람의 평균 정상 체온은 97.5도로 측정됐다. 지난 2017년 영국에서 건강한 성인 3만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97.9도 였다. 지난 150여년 새 평균 체온은 화씨 1도 가량 떨어졌다.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체온의 변화는 중요한 현상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위생 상태가 개선되고 의료기술이 향상되면 발열의 원인인 감염이 줄어들 수 있다. 체온 측정이 선진국의 교외 거주자를 대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었을까.
UC 샌타바바라의 인류학 연구팀은 지난 20년간 볼리비아 아마존 유역의 한 원시부족을 대상으로 체온 조사를 계속해 왔다. 거의 현대 문명과 접촉없이 살아가는 이들은 여러 감염 증세를 앓고 있다. 감기부터 기생충, 폐결핵까지. 볼리비아 의사들과 팀을 이룬 조사팀은 지난 2002년부터 마을을 돌면서 진료도 하고 체온도 기록해 나갔다.
지난 2002년 조사한 이들의 평균 정상 체온은 98.6도. 한 세기 반 전 유럽이나 미국에서 측정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16년 후 조사에서는 급속히 떨어져 97.7도를 기록했다. 일년에 화씨 0.09도씩 떨어진 셈이다. 서구에서는 150여년 간에 걸쳐 일어난 체온 저하 현상이 이들에게는 불과 그 10분의 1기간 안에 일어났다. 성인 5,500명을 대상으로 1만8,000회의 관찰 끝에 나온 것이어서 표본집단의 크기는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전반적인 볼리비아의 의료상황은 호전됐으나 다양한 감염에 노출된 이들의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전반적으로 인류의 체온이 떨어진 일부 원인은 몸이 각종 감염을 상대로 전처럼 열심히 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일 수는 있다. 항생제가 감염 기간을 줄이고, 이부프로펜이나 아스피란 같은 약이 감염과 싸우는 것을 돕는다. 에어컨이나 히터 등 냉난방 기구의 보급으로 몸이 적정 체온 유지를 위해 전처럼 부지런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원인의 일부로 꼽힐 수 있겠다. 하지만 아마존 원시부족에게는 에어컨이나 온열기구가 없다. 옷과 담요는 전보다 더 많이 보급됐지만.
체온 저하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체온은 간단하게 측정된 수치 하나로 몸의 상태를 말해준다. 그만큼 중요하다. 코로나 감염여부도 우선 체온으로 판단하지 않는가. 하락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