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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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이냐, 개혁이냐

2021-02-03 (수)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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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가 출범한지 2주일이 지나고 있다. “미국을 다시 하나로 만들고 미 국민을 통합하는데 나의 영혼을 걸겠다”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한 이후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다른 세상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지도자나 취임 일성으로 통합을 말하고 “나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만, 오늘 미국에서는 그 말이 너무나 절실한 절규로 다가온다.

도널드 트럼프, 그가 지난 4년 동안 국민의 마음을 헤집어놓은 상처는 너무나 컸다. 그 심각한 분열을 바이든이 정말 봉합해낼 수 있을까, 트럼프가 좋다며 그에게 표를 던진 7,400만 표심은 포용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복원을 열망하는 미국의 저력이 있기에 바이든은 반드시 링컨의 통합 역사를 되살릴 것으로 믿는 의견이 다수다.

지금 미국에서 통합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개혁이다. 바이든은 한편으로는 통합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시대에 있었던 각종 국가 간, 인종 간, 빈부 간 갈등 현안의 구조적 개혁을 진행 중에 있다. 시간을 늦추기는 했으나 트럼프에 대한 탄핵 추진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통합과 개혁이라는 조금은 모순된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와 같은 진보 정권이며 촛불혁명을 통해 당선된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들어 다소 고전하고 있었던 것은 통합을 위해 개혁을 머뭇거리는 사이 개혁도 통합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 사면설을 꺼냈다가 국민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통합을 내세우며 오만해져도 안 되지만 통합을 한다는 명분으로 개혁을 멈추지도 말아야 한다.

검찰 권력의 개혁은 뒤늦게나마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나 언론 재벌과 극우 논객들의 반개혁 폐단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태극기부대 같은 강성 시위대의 활동이 뜸해진 뒤로는 유명세를 탄 소수의 보수 평론가들이 매일같이 저주에 가까운 험담과 궤변으로 정부의 일상을 평가한다. 그러면 보수 언론들이 그 글을 받아 그날 조간의 머리기사로 싣고 이어서 신문을 읽은 보수 야당들은 그 내용을 정부를 공격하는 당일의 지침으로 삼는다.

세월이 몇 십년을 흘러도 머릿속에는 언제나 ‘강한 한미동맹’만 있지 ‘분단 극복’이나 ‘한반도 평화’가 없는 반개혁의 이 악성 바이러스는 떠날 줄을 모른다. 한민족은 본시 보수성이 강하고 진보와 개혁에는 매우 소극적이기는 했다. 얼마나 개혁을 싫어했으면 일제 밑에 빌붙어 동족을 못 살게 굴었던 사람들이 해방 이후 여전히 지배자로 군림해왔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변화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자기표현인데 변하지 않는 생명체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에 희망이 보이는 것은 미 국민들이 지금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메이저 언론들이 모두 팔을 걷어 부치고 이 일에 협력하고 나서자 트럼프를 지탱해주던 극우단체들이 태도를 바꾸었고 공화당도 진보적 전환으로의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동안 음모론이나 허위정보를 맹신하면서 자기가 마치 이 땅의 백인 주류인양 착각하는 일부 시민들이 아직도 그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통합과 개혁은 선후의 문제도, 양자택일의 문제도 아니다. 개혁이라는 수단을 통해 통합을 이루어가며 개혁을 통해 반대 세력을 포용해갈 때 갈등도 저항도 완화되고 순치시켜 나갈 수가 있다.

트럼프에 대한 탄핵심판 결과가 분명치 않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언젠가 춘향전을 인용해 통합을 이야기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이 기억난다. “변사또를 처벌한다고 춘향이의 한이 풀리는 게 아니다. 춘향이가 이몽룡을 만나야 비로소 춘향이의 한이 풀리는 것이다.”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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