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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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것들의 머무름

2021-01-30 (토) 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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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협을 견디며 매일 매일 비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해 온지도 일년이 되었습니다. 손바닥만한 입 마스크 한 장에 운명을 맡기고 그것을 쓰지 않으면 어디도 갈 수 없는 인간의 삶이 가련합니다.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집콕의 동물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생활했던 일상의 모든 것이 그토록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었음을 새로 알게 됐습니다. 코로나19에 걸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잠자고 일어나면 올림픽경기에서 기록 갱신하듯 매일 갱신하지만 생명이 붙어있는 사람은 여전히 숨 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신주사는 순서를 정한다고 하지만 코로나19 앞에서는 순서도 없고, 예외도 없고, 예고도 없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주 평등합니다. 그래서 핵무기보다 더 무섭기도 합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라는 ‘시인과 촌장’의 노래가 있습니다. 인간은 고통과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뇌며 살아왔는데, 지나가야 할 것들이 그대로 머물러 남아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지나가는 것과 머무르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머무르는 것에는 이끼가 끼고 녹이 슬며 생명이 있든 없든 모든게 다 썩게 됩니다. 그런데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코로나바이러스는 흘러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계속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 이전과 다른 삶, 세컨드 라이프에 들어섰는지도 모릅니다. 예전과 다르게 비즈니스를 하고, 공부를 하고, 일상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언택트 세상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모든 것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소풍 다녀갔습니다. 현실은 죽음이 일상화하다 못해 처리 곤란한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머물러있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떠나더라도 자신의 마지막이 의미 있고 장엄하며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자들은 장례 절차는커녕 쓰레기장 오물 취급당하면서 곁에 지켜주는 가족도 없이 홀로 쓸쓸히 비참하게 소풍을 끝냅니다.

잠잠하고 일상의 너그러운 것들의 미덕도 코로나19가 아니면 모르고 지나쳤을 수 있습니다. 겪은 만큼 아픈 만큼 너그럽게, 고요한 생각 속에서 지난 일상의 많은 것을 음미해봅니다. 이 세상에 소풍 온 인생, 서로 위로하면서 건강하게 즐기겠습니다. 건강하고 마음 편한 것이 지상 최고 보약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위협에 대응하는 ‘뉴 노멀’ 시대에 방역수칙 잘 지키면서 언택트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이 부작용 전혀 없는 명품 백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가야 할 것이 머물지 않고 섭리대로 지나가고, 입 마스크 쓰지 않는 일상으로 복귀를 갈망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이 상책인 것 같습니다.

<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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