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지지율은 34%. 4년 재임 중 평균 지지율은 41.1%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 이 같은 기록을 남기고 제 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트럼프의 임기는 언제 끝났나. 2021년 1월20일 정오가 아니다. 그 보다 사실상 두 주 앞선 2021년 1월6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버펄로 뿔 모자를 쓰고 성조기를 단 창을 휘두르는 사교 형태의 극우파 집단 큐어넌(QAnon)의 주술가. 텍사스에서 달려온 부동산업자. 난동의 와중에서도 ‘셀피’찍기에 여념이 없는 백인 20대 여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수영선수….
도대체 무슨 조합인지 헷갈린다. 그런 그들이 트럼프의 응원 가운데 폭도로 돌변해 미 의사당에 난입해 유혈사태를 불러왔다. 그 초현실적 사건의 현장이 전 세계로 중계되는 순간 트럼프는 바로 식물대통령이 되고 만 것이다.
“트럼프에게 이제 정치인생 2막은 없다. 두 번째 탄핵절차가 남아 있지만 그 결과와 관계없이 트럼프는 2021년 1월6일 치욕의 그 순간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공화당유권자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높다. 그렇지만 그 인기도 머지않아 어느 날 썰물 빠지듯 갑자기 사라지고….”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으로 정치적 ‘non-person’이 된 트럼프가 맞을 앞날을 이렇게 비유해 그리고 있다.
“매카시즘 광풍으로 한 때 아이젠하워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그 조지프 맥카시에 대한 상원의 비난 결의안이 결국 채택됐다. 그가 주도한 공산주의자 색출운동은 마녀사냥식 선동임이 드러나면서. 그 때가 1954년 6월이다.
그리고 1년도 채 안 지난 시점. 매카시는 여전히 연방상원의원직(공화)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정치적으로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그 매카시가 한 공화당의 정치기금모금 파티에 초청도 받지 않은 채 참석했다. 그러자 주최 측은 나가 줄 것을 요청했다. 쫓겨난 매카시는 어두운 골목에서 흐느껴 울고 있는 것을 한 기자가 목격했다….”
정치현실은 그렇다고 치고 그러면 트럼프는 훗날 역사적으로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조지 워싱턴. 역사가들이 역대 미 대통령을 평가할 때마다 항상 ‘가장 위대한(The Greatest)’으로 분류되는 대통령들이다. 이들과 함께 ‘톱(Top)10’에 드는 대통령으로는 시오도어 루스벨트, 토머스 제퍼슨, 해리 트루먼, 우드로 윌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앤드루 잭슨, 존 케네디 등이 거론된다.
이와 반대로 ‘최악(The Worst)’으로는 거의 대부분 조사에서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이 꼽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워런 하딩, 앤드루 존슨, 프랭클린 피어스, 밀러드 필모어, 윌리엄 해리슨, 존 타일러, 율리시스 그랜트, 재커리 테일러, 조지 W. 부시 등의 이름이 ‘바텀(Bottom) 10’ 리스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 두 그룹 중 트럼프는 어느 쪽에 자리 잡게 될까.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재임 중, 혹은 백악관을 떠난 뒤 바로 나오는 평가는 더 더욱 잘못되기 십상이다. 트루먼 대통령의 경우가 그렇다. 마지막 지지율 32%가 가리키듯 한국전쟁의 여파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트루먼은 쫒기다 시피 백악관을 떠났다. 이와 동시에 그에 대한 평가는 ‘최악(The Worst)’그룹에 고착됐었다.
세월과 함께 평가가 달라졌다. 소련과의 냉전 승리에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새롭게 평가되면서 트루먼은 톱 10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거기다가 단임으로 끝난 대통령들의 경우 역사적 평가 점수는 낮기 마련이다. 실제로 바텀 10에 든 대통령 중 상당수는 단임 임기도 채 못 채우고 사망해 그 같이 낮은 점수를 받은 억울하다면 억울한 케이스다.
이런 점에서 백악관을 바로 떠난 트럼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기상조의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 벌써부터 나오는 평가는 ‘최악’ 혹은 ‘최악수준’의 대통령이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역사학자이자 대통령학의 권위자인 조지프 엘리스의 평가도 바로 그렇다.
2018년 미국정치학회의 170여명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역대 대통령평가에서 트럼프는 ‘최악’의 평점을 받았다. COVID-19 대처 실패로 40여만이 사망하는 사태도 있기 전이다. 의사당 난동사태도 발생하기 전이고 트럼프가 두 번씩 탄핵당하기도 전이다.
그러니 트럼프는 미국연방을 분열시켜 남북전쟁이란 참사를 가져오게 한 뷰캐넌을 제치고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것이 엘리스가 내린 전망이다. 그 뿐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 CNN, 애틀랜틱 등 미국의 주요언론은 물론 영국언론의 평론가들도 이구동성으로 트럼프에게 ‘사상최악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헌정(?)하고 있다.
‘최악의 대통령’으로 등극한 트럼프. 이는 다름 아니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에 치명적 오점을 남긴데 대한 분노의 논고다. 동시에 이는 미국시대를 열게 한 미국 특유의 ‘지도자 운’이 소멸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감회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평화적 정권교체 전통의 틀을 다진 워싱턴, 내전으로부터 미합중국을 구해낸 링컨, 가장 위대한 세대를 이끈 루스벨트 등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위기를 맞았을 때마다 지켜낸 위대한 대통령들. 미국이 파당으로 찌든 오늘날에서 보면 이들은 ‘하늘이 낸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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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