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황당무계한 음모론 중에 계엄령 등은 이제 설 자리를 잃게 됐다. 더 큰 관심사인 바이러스와 백신의 경주는 이제 막 시작됐다. 지금은 바이러스의 기세가 압도적이다. 남가주는 코로나로 숨진 사람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에서, ‘아는 사람’으로 한 걸음 바짝 다가왔다.
지난 11월초 LA에서는 검사자 25명중 한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달 초에는 5명중 한 명, 지금은 세 사람중 한 사람 꼴로 감염됐을 것으로 추산한다. 코로나 사망자는 지난달 초만 해도 하루 30명이던 것이 최근 1주일간은 하루 평균 400~500명을 넘나든다. 평소 암등 온갖 질병, 교통사고, 살인사건까지 더한 LA의 하루 사망자가 170명 정도였다니 사태가 얼마나 급박한지 알 수 있다.
응급실 병상만 100여 개인 LA 한 대형병원 응급실 의사인 한민수씨에게 문의했다. 지난해 3월 1차 유행에 비해 3차 유행인 지금은 얼마나 다른지-. 근 열 달만에 다시 한 전화에서 그는 “그 때보다 거의 10배는 나빠진 것 같아요. 살벌해요.”라는 현장소식을 전한다. 가파른 확산세는 그래프에 드러난다. 지난 봄 1차, 여름 2차 유행 때 입원환자 증가세가 완만한 곡선이었던 반면, 12월부터는 거의 수직에 가깝게 치솟고 있다.
모두 음압 설비를 갖춘 이 병원의 응급실 100베드 중 40~50베드는 입원실이 나기를 기다리는 코로나 환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각 20명씩 수용할 수 있는 텐트 2동을 별도로 설치해 응급환자를 받고 있다 응급실에 산소가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중증 호흡기환자에게 산소없이 할 수 있는 응급처치가 무엇인가.
지난 연말에는 응급실의 동료 의사 한 사람도 코로나로 숨졌다. 아직 장례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동료 심장전문의 한 사람도 숨이 가빠 급히 입원했다. 임시채용 의사까지 더하면 응급실의 감염된 의사는 6명, 스탭들의 감염도 늘면서 간호사 한명이 돌보던 응급환자 수는 3명에서 8명으로 늘었다.
지금 LA의 병원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과연 환자 중증도 분류, 트리아지(triage)가 도입돼 선별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카운티 공중보건 당국은 매일 각 병원의 입퇴원 숫자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의료 시스템이 밀려드는 환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소생 가능성이 있는 사람부터 살리게 된다. 전쟁터나 대형 재난 때 있는 일이다. 한정된 의료인력과 인공호흡기, 산소 등을 우선 이들에게 돌린다.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이 생겨나게 된다는 말이다.
한민수씨는 “지난 연말만 해도 환자 중증도 분류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았다”고 전한다. 이 병원도 응급의사 등 전문의 3명으로 트리아지 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담당 의사는 팀에서 배제된다. 의사는 누구나 자기 환자를 살리려 하기 때문이다. 수치 등 객관적인 의료정보를 가지고 환자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미 선별 치료는 일부 도입됐다고 볼 수 있다. 약효가 확증되지는 않았지만 병원에서는 코로나 환자에게 램데시비르를 투약한다. 폐렴에 걸리면 누구에게나 항생제를 주지만 코비드-19 환자라고 모두 이 약을 주지는 않는다. 코로나 환자도 산소통을 줘서 집에 돌려 보내고, 램데시비르 처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자도 퇴원 후 외래에서 주사를 맞도록 하는 실정이다.
상황은 매일 바뀐다. 지역은 물론 병원에 따라 다르다. 미 전역에서는 코로나 사망자 수가 1월말, LA는 2월에 피크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이번 주 들어 입원환자가 주춤해진 병원도 있지만 더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있다. 연말연초 휴가시즌 감염자들이 모두 숫자에 잡힌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럭비공이다. 어디로 튈 지 알 수가 없다. 독감처럼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갑자기 생명줄을 놓는 이들도 있다. 평소 기저질환이 없던 건강한 청장년이 숨지기도 한다. 알려진 대로 바이러스는 호흡기뿐 아니라 심장, 신장, 뇌, 피부, 소화기관 등도 무차별 공격한다. 핏줄로 연결된 장기는 모두 들여다 본다고 할 수 있다.
“인공호흡기에 연결시키면 다시 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요.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전화로나마 가족과 말씀을 나누게 할 때가 있어요. 바로 옆방에는 부인도 함께 입원해 있고... 가슴이 아프죠.”
팬데믹 이후 그 자신도 집안에서 어머니를 뵌 적이 없다는 한민수씨는 “더 걱정은 변종 바이러스가 어떤 변수가 될 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한다. 백신과 바이러스의 레이스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지 섣불리 점치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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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