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한 센텐스로 요약해 기억되어야 한다.’- 대통령학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다. 한 문장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한 시대를 내다보면서 신념의 정치를 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대한(great)’으로 평가되는 대통령들이 대부분 그렇다. 링컨하면 노예해방이 떠올려지는 것처럼.
단임으로 끝나는 대통령은 한 센텐스로 요약이 잘 안 된다. 그가 남긴 유산, 업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잊혀 진다.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대통령은 예외가 될 것 같다.
‘버펄로 뿔 모자를 쓰고 상의를 벗은 채 한 손에는 성조기가 달린 창을 들고 폭도들 사이를 마구 휘젓고 다니는 큐어넌(QAnon-음모론을 신봉하는 준 사교집단 성격의 극우파단체)의 주술가(shaman)’-.
2021년 1월6일 연방 상하양원이 합동회의를 통해 대선결과(바이든 당선)를 확정하는 날. 수 천 명의 트럼프 지지자들의 난입과 함께 미의사당에서 벌어진 그 초현실적 광경. 그 날은 미국 역사에서 두고두고 기억될 것으로 보여서다. 트럼프란 이름과 함께
전 세계가 경악했다. 민주주의의 심장인 미 의사당에서 그 같은 폭력사태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다니…. 더구나 그것도 다름 아닌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사실상 폭도들을 지휘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에.
“전 세계에 빛을 발하는 언덕위의 도성(City upon a hill), 그 미국의 횃불이 꺼졌다.” 지오폴리티컬 퓨처스의 조지 프리드먼의 개탄이다.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이자 역사에 반하는 범죄다.” 월스트릿 저널의 페기 누난의 추상같은 논고다.
“쿠데타다. 반란이다. 그 보다는 난동(sedition)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 날의 사태에 대해 계속 제기되는 논란이다. 이와 함께 가중되는 것은 트럼프에 대한 사임압력이다.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하라, 탄핵하라 등등.
동시에 한 질문이 제기된다. 미 의사당난동 사태는 편 가르기만 일삼아 온 트럼프 포퓰리즘 정권의 마지막 헐떡거림인가, 아니면 폭력 정치의 도래를 알리는 전조인가 하는 것이다.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상황은 결국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으로 이어진 1850년대 상황과 흡사하다.” 루이지애나대학의 네이튼 캘모어의 주장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도 그 같은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유권자의 1/3도 정치적 폭력의 정당성을 ‘어느 정도’란 단서와 함께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여론조사는 밝히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유권자 정서와 관련, 결국은 나치의 등장으로 귀결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론도 제기된다. 트럼피즘은 소실되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영일전쟁(1812~1815년) 당시인 1814년 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미 의사당 외부침입사태가 발생한 2021년 1월6일. 그 날을 기해 ‘트럼프 유산’은 모두 사라졌다.”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의 진단이다.
트럼프 정책, 더 나가 공화당 어젠다가 모두 잘 못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조기개발 등 나름 평가될 업적도 있다. 폭도들이 의사당을 점거, 4시간 가까이 난동을 부리는 광경이 생중계되면서 그 모든 것은 잊혀 지게 됐다는 거다. 트럼프는 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클로즈업 되면서.
무슨 말인가. 트럼피즘은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물러난 후 더 위세를 떨칠 것이란 기대가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트럼프가 그 배후에서 조종하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운동의 세 과시, 큐어넌(QAnon)이니 하는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들의 폭력성 시위도 시들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권력에 집착했다. 그래서 사주한 것이 의사당 난입사태다. ‘대선승리를 도둑맞았다’는 주장과 함께. 그런데 그 사태로 오히려 트럼프는 식물 대통령이 되고 공화당 어젠다도 모두 잊혀 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고 할까.
그 결과 급격한 권력누수 상황 한 가운데에 있다고 할까. 그런 트럼프의 모습을 타임지는 이렇게 전한다.
“탄핵의 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잇단 각료와 보좌관들의 사퇴. 거기다가 친 트럼프 의원들마저 하나둘 반기를 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트럼프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시피 했다. 그 고뇌의 밤을 지내면서 트럼프는 마침내 항서(降書)를 썼다.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약속하는 비디오를 트위터에 올린 것이다.”
트럼프 연기연출의 정치무상 드라마. 요약하면 이런 것 같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지자들과 직접소통하면서 편을 갈랐다. 결국 형성된 것이 트럼프 팬덤이다. 일찍이 링컨을 배출한 공화당도 그 팬덤의 포로가 됐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모두 그 광신적 팬덤 앞에 숨을 죽였다. 그 광신도들은 결국 일을 냈다. 의회 공격에 나선 것이다.’
대통령의 선동에 민주주의 공격에 나선 트럼피즘 광신도들. 그 역복사품인 데칼코마니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에서 찾아진다면 과언일까. 오직 문빠를 위한, 문빠에 의한 문재인 정권의 한국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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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