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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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중의 줌 가족 모임

2020-12-30 (수) 장경자 패사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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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라는 강요받은 집콕 생활에 그런대로 적응하며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의 계절이다보니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바이러스에 질 수는 없지라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겁게 지낼 방안을 이리저리 떠올려보았다.

남편과 함께 우선 맛있고, 재미있는 저녁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각종 식당 메뉴를 뒤졌다. 양식은 너무 버터로 볶고 굽고, 사시미는 시켜다 먹기에는 뭔가 꺼림직하고, 한식은 자주 먹으니 재미가 덜하고, 결국 중국음식으로 낙착되었다. 그것도 너무나 익숙한 탕수육과 양장피. 어릴 적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한 향수가 작용한 것 같다. 아들이 보내온 와인과 함께 시켜온 음식을 먹으며 한국에서 즐겼던 중국음식들을 열거해가니 오늘 저녁 배부르게 모두 먹은 듯했고 재미있었다.

조금 후, 약속한 시간에 아들과 딸이 줌 모임에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반가운 얼굴들인가. 타주에 사는 아들과 딸을 못 만난 지 일년이나 되었으니. 그동안 전화 영상을 통해 종종 짧은 만남은 가졌었지만, 오늘처럼 작정하고 만나기로 하니 더욱 반갑고 흥분되었다. 내가 줌으로 만나자고 제안했을 때는 오케이 정도의 반응이었는데, 재택근무하며 부시시하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아들은 어느새 머리에 무스로 멋도 냈고, 딸은 화장까지 예쁘게 하고 화면에 나와 앉았다.


사실 이번 줌은 내가 호스트를 자청하면서 시작된 모임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속하는 나는 요즘 성행하는 줌 미팅을 겨우 뒤좇아 다니는 정도의 실력이다. 그것도 호기심이나 재미로 익힌 것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운운 하는 곧 다가올 세계에 대한 나의 생존수단으로 배운 것이다. 내친 김에 줌 미팅 호스트 과정까지 배우게 되었다. 평소에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도움을 주던 아들은 다른 바쁜 일이 있다고 해서 성격상 나와는 종종 부딪치는 딸에게 부탁하게 되었다. 마치 컴퓨터를 잘 알고 있는 친구에게 하듯 빠른 영어로 컴퓨터 용어를 이어 나가는 딸이 야속했다. 그러나 눈치도 보며, 스트레스도 받으며, 꾸욱 참고 목적 달성까지 갔다. 결국 오늘 줌 모임은 나의 첫 번째 실습 장소인 셈이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고, 흐뭇했다. 아이들도 박수를 쳐주고 기뻐해주었다.

우리의 대화가 20분쯤 진행 되었을 때 예정되었던 친척들이 우르르 우리 줌에 들어왔다. 8살부터 47살까지의 손녀들, 조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들 건강해 보여서 좋았고, 코로나에 기죽지 않고 활기찬 모습들이 자랑스러웠다. 빨간 사슴 코, 머리 뿔등이 등장했고, 컴퓨터를 이용해 빨간 산타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는 묘기부터 팬데믹 동안에 처음으로 시도해보았다는 서툰 한국음식 사진들, 미국보다는 한국이 코로나로부터 더 안전해서 한국으로 피신 갔었고, 덕택에 한국말도 많이 늘었다는 등.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고맙게도 줌 회사에서는 이번 시즌 동안 40분 제한이던 플랜을 무제한으로 배려해주었기 때문에 모두들 자유롭게 축제 분위기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새해 첫날에는 멀리 동부에 사는 친척들까지 모두 함께 줌으로 만나자며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 생애 처음이었던 줌 가족 모임은1시간을 넘기며 끝을 맺었다.

아이들이 모두 줌을 떠난 후, 나는 마지막으로 줌을 닫으며 행복감이 밀려옴을 느꼈다. 거의 일년 동안 우리를 가두고, 우울하게 했던 팬데믹 속에서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건강 안전에 힘썼고, 비록 재택이지만 각자 일에 최선을 다했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렇게 만나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아무리 사소한 가족 모임이지만, 그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꼈고, 아무리 팬데믹이지만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용기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곧 새해에 있을 우리 가족들의 제 2회 줌 미팅을 생각하니 무척 설렌다.

<장경자 패사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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