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끗 차이
2020-12-28 (월)
김지나 / 메릴랜드
아주 오래전에 2%라는 음료수가 나왔다. 밍밍하기도 하고 달큰하기도 하고 살짝 찝찔하기도 한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그저 그런 맛, 그렇다고 우유처럼 고급지게 하얗지도 못한 물 같은 음료였다. 물을 돈을 주고 산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을 때, 다른 음료에 비해 2%를 마시면 살이 찌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와 함께 고급진 심리를 이용한 음료수의 첫 시음이 아니었나 싶다. 한 끗 생각의 전환이 성공으로 이루어진 대단한 음료수의 출현이었다.
거의 동시에 스타벅스라는 거대한 미국 기업이 한국에 들어갔다. 스타벅스의 컵을 들고 횡단보도를 바삐 건너는 멋진 뉴요커의 광고를 내세워 마치 스벅의 로고 컵을 들고 있으면 나도 뉴요커가 되는 것처럼 착각이 들었다. 테이크아웃이라는 이상야릇한 단어로 컵에 로고 하나 달랑 들어간 커피를 들고 다니는 소비자 덕에 돈도 안 들이고 광고효과를 본 한 끗이 다른 생각의 발상이었다.
한 끗은 화투판, 특히 섰다판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고스톱을 생각하면 쉬울 거 같다. 피박의 쓰라린 맛을 아는 사람들은 면피가 되는 그 한 장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피가 하나 모자라 더블로 점수를 내주느냐, 피 하나를 먹어 면피를 하느냐, 그 피 한 장이 고스톱의 운명을 바꾼다.
손바닥 뒤집기처럼 단 한 끗의 차이로 싸구려 시장 제품이 되기도 하고 고급진 명품이 되기도 한다. 명품백도 바느질 한 땀의 차이로 진품과 짝퉁이 구별된다. 그림에서는 붓 터치의 미세한 한 끗 차이가 대작이 되기도 하고 진품을 똑같이 베끼는 복사품이 되기도 한다. 운동선수들의 0.1초가 승부수의 최대 간극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한 끗 차이이고 이 간발의 차이를 내기 위해 수많은 땀을 흘리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 끗은 인간의 모든 갈림길을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의 한 끗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한 끗은 있고 언제, 어디에서나 한 끗은 연속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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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