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들지 말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트럼프의 사면권 행사 사례를 찬찬히 뜯어보자.
사실 빌 클린턴도 사면과 관련해 오점을 남겼다. 클린턴은 잠적한 금융업자 마크 리치를 사면했다. 이에 앞서 리치의 전 부인은 민주당에 통 큰 기부를 했고,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건립사업과 상원의원 선거에 나선 힐러리를 돕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리치는 클린턴의 전 백악관고문 잭 퀸을 기용해 로비의 첨병으로 활용했다.
조지 H.W. 부시는 임기 중 마지막 성탄전야에 이란-콘트라 사건에 연루된 여섯 명을 사면했다. 이 중에는 그때까지 재판에 회부조차 되지 않았던 카스파 와인버거 전 국방부장관과 전 CIA 관리 듀웨인 크래리지도 포함됐다.
부시는 사면을 발표하면서 “이들의 행동이 옳건 그르건, 그 밑바닥에 깔린 동기는 애국심이었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특별검사인 로런스 E. 월시는 “장장 6년을 끌어온 이란-콘트라 은폐사건이 부시 대통령의 조치로 한순간에 맹탕으로 종결됐다”며 “부시 대통령은 자신을 위한 보호막을 치려고 사면권을 행사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 어떤 대통령도 트럼프만큼 사면권을 철저히 남용하진 않았다. 그는 잘못을 바로잡고, 억울한 자를 신원을 회복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우군에게 상을 주고, 그들의 부패를 눈감아주며, 임기 내내 자신을 부대끼게 만든 특별검사의 조사 결과를 가능한 한 완전히 지워버리는 도구로 사면권을 활용했다.
재임 중 그의 첫 번째 사면 대상이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을 중단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 법정모독죄로 구속된 애리조나주 마리코파 카운티의 전 셰리프 조 아르파이오였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트럼프는 아르파이오의 죄는 “맡은 일을 했다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본격적인 사면권 행사는 시작에 불과하다. 바이든의 취임식까지는 아직도 20여일이 남아있다. 트럼프가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날 수가 그만큼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재자 기질이 강한 트럼프가 사면권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의 절대적 재량권인 사면권은 군왕이 행사하는 막강한 권력에 비견된다. 미국의 연방헌법을 만든 건국의 아버지들이 영국 국왕의 행사하던 사면권을 대통령의 행정명령권에 포함시킨 이유는 ‘불의로부터의 탈출판’(escape valve from injustice)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이 권한이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알렉산더 해밀턴이 지적했듯 “정의는 흉측하고 잔인한 얼굴을 갖게 된다.” 조지 메이슨에 따르면 타락한 폭압적 대통령은 “자신이 부추긴 범죄를 자주 사면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자연히 이 권한을 오용하게 된다. 폭군을 꿈꾸는 지도자가 언젠가 “공화정을 파괴하고 왕정을 세울 수도 있다.”
트럼프 역시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공화정을 파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법무부가 대통령의 사면 요청을 검토하는 절차를 우회했고, 사면허용 기준을 무시했으며, 무엇보다도 개인적 커넥션, 혹은 정치적 사익을 위해 사면권을 행사했다. 하버드 법대 교수인 잭 골드스미스는 지금까지 트럼프가 사면했거나 감형을 해준 67명 가운데 60명이 그와 정치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화요일 밤에 무더기로 사면된 15명과 감형을 받은 다섯 명 모두 이들 60명 가운데 포함된다.
특히나 세 가지 이유로 그의 사면권 행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첫째, 트럼프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조사결과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 조지 파파도폴러스와 알렉스 반 데르 즈완을 사면했다. 이들은 뮬러의 조사과정에서 제기된 위증혐의에 대해 유죄를 시인한 범법자들이다. 백악관은 이들의 사면을 발표하면서 “파파도폴러스와 알렉스 반 데르 즈완은 단순히 절차법을 어겼을 뿐”이라며 “이번 조치는 뮬러 특별검사팀이 숱한 사람들에게 자행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외에도 트럼프는 전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을 사면했고, 또 다른 보좌관 로저 스톤의 형량을 감해주었다. 아마도 다음 차례는 그의 선거대책 본부장을 맡았던 폴 매너포트가 아닐까?
둘째로, 그는 부패와 비리를 사소한 잘못으로 치부했고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최고의 가치로 꼽았다. 트럼프는 세 명의 전직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중범 기록을 말끔히 털어주었다.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트럼프에게 일착으로 충성맹세를 했던 크리스 콜린스는 백악관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전화해 주식거래와 관련한 내부정보를 일러주고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거짓진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후 유지를 시인했다.
공화당 하원의원들 중 두 번째로 트럼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는 던칸 헌터는 선거자금에서 수십만 달러를 빼돌려 가족여행의 항공운임 및 경비로 사용했다. 유죄가 확정된 그는 다음달부터 11개월의 실형을 살아야할 처지였다. 스티브 스톡먼 전 공화당 하원의원은 보수 재단이 모금한 자선기부금을 개인 선거자금으로 전용했고, 이와 관련한 23개 혐의로 기소돼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이번에 트럼프로부터 잔여 형기를 감형 받았다.
세 번째로, 트럼프는 2007년 바그다드의 번잡한 광장에서 이라크 민간인 14명을 사살한 민간보안 하청업체 블랙워터의 전 직원을 네 명을 사면했다. 그들 중 한명인 니콜라스 슬레이튼은 현지 의대생의 양미간에 총을 쏘아 숨지게 한 후 1급 살인죄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슬레이튼 외에 나머지 세 명은 2급 살인죄로 12년에서 15년 사이의 형량을 선고받았다. 이들에 대한 감형조치는 블랙워터 창업자인 에릭 프린스가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벳시 디보스 교육부장관의 오빠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트럼프의 사면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거짓말은 사소한 것이고, 공적 부패는 개인적 충성만큼 중요치 않으며, 정권의 하수인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외국 시민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트럼프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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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마커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