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운동에 자전거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아 자전거를 하나 새로 장만했다. 어른용이지만 바퀴가 앙증맞게 작은 자전거이다. 바퀴가 큰 자전거는 언덕진 곳을 올라가기가 쉽지 않고 자동차로 운반하기도 불편한데 작은 바퀴의 자전거는 반으로 접을 수도 있고 타고 내리기도 쉬우니 어디든지 가져가서 편하게 탈수 있을 것 같다. 반짝이는 자전거 바퀴살을 보고 있노라니 바퀴는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인류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 중 하나로 꼽는 바퀴는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손쉽게 운반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만들어졌다. 바퀴가 발명되기 전에는 무거운 짐을 옮기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사람들은 물건 밑에 나무 썰매처럼 나무토막을 까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방법은 특히 마찰력이 작은 눈이나 얼음 위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지만 흙길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둥근 통나무들을 바닥에 까는 ‘굴림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란히 깔아놓은 통나무 위로 무거운 짐을 굴리면 마찰력이 크게 줄어 옮기기가 훨씬 수월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도 이 방법으로 커다란 돌을 날라 피라미드를 건설했지만 멈추지 않고 돌을 운반하려면, 돌 앞에 통나무를 계속 깔아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바로 ’바퀴‘였다. 최초의 바퀴는 통나무를 원판 모양으로 잘라서 만들었다. 하지만 이 바퀴는 나뭇결에 따라 강도가 달라 약한 부분이 쉽게 쪼개지곤 하여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 인들은 기원전 3500년경에 두꺼운 나무판자 세 조각을 구리 못으로 연결하여 바퀴를 만들었고 바퀴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나무 썰매 아래에 있는 축에 끼워 수레를 만들었다. 바퀴 달린 수레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짐을 한결 손쉽게 나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무 바퀴는 무거워서 빠른 속도로 달리거나 방향을 조정하기가 어려웠는데 기원전 2000년경 소아시아 시리아 북부에서 활동했던 히타이트 족은 원판 모양이 아닌 바퀴살이 있는 바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퀴살을 사용한 바퀴는 가벼워서 수레의 속력이 빨라졌지만 역시 나무로 만든 바퀴는 한계가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에서는 부서지기 쉬웠고 바퀴 테두리가 쉽게 닳았기 때문에 바퀴 테두리를 짐승 가죽이나 금속 등으로 씌워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시절 기차가 발명되면서 쇠로 만든 기차 바퀴가 탄생하였고 1865년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로버트 톰슨이 금속 바퀴 테두리에 생고무를 두른 고무바퀴를 처음 사용하였다. 최조의 자전거는 약 200년 전에 만들어진 나무로 된 것이었다고 하는데, 아일랜드의 수의사인 존 던롭은 자전거를 타던 아들이 딱딱한 바퀴 때문에 충격을 받아 두통을 앓는 것을 보고 바퀴가 받는 충격을 최대한 줄일 방법을 고안하여 바퀴 주위에 속이 빈 튜브를 두르고, 그 속에 공기를 가득 채운 자전거 바퀴를 1800 년 후반에 개발하였다.
자전거의 묘미는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바퀴의 회전 운동이 관성의 법칙에 의해 넘어지지 않고 계속 굴러가는데 있다. 우리 몸에서도 자전거의 원리처럼 쉬지 않고 돌아가는 사이클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세포 안에서 이루어지는 크렙스 사이클(Krebs cycle)이다. 우리 세포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분해하고 산화시키면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을 말하는데, 계속해서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에너지를 얻어 살아 갈수 있다. 의료에도 자전거라는 용어가 종종 등장한다. 예로 콩팥의 사구체염 치료에도 자전거 요법이라고 불리는 치료가 있는데, 단백뇨를 일으키는 특정 사구체염에 이태리 의사 폰티첼리가 두 가지 약물을 매달 번갈아가면서 치료를 한 것에서 그 별명이 유래되었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바퀴를 보면 동그란 원이다. 그 동그란 원을 생각하면 반지를 연상케 되고 반지는 영원히 변함없는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어수선한 시대이지만 그래도 세상이 쓰러지지 않고 돌아가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 힘은 변함없는 사랑과 사랑을 받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감사에서 나오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사랑과 감사의 계절이다, 힘차게 페달을 밟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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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