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해마다 항상 가장 바쁜 달이었다. 그런 부산함이 올해는 팬데믹으로 모두 멈추었다. 집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며 무료해져 TV를 켜니 메릴랜드 공영방송(Maryland Public Television: MPT)에서 흑인의 미국 역사(Black American History)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푸른 하늘과 잔잔한 물결이 이는 수평선과 함께 “이곳이 1513년 첫 아프리칸, 후안 가리도가 미국 땅을 밟은 곳”이라는 첫 장면부터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임스타운에 가서 들었던, 1619년에 노예로 온 아프리카인들이 첫 미국 정착민이었다는 이야기와는 다른 사실이었다. 그는 서아프리카에서 1480년경 태어나 기회를 찾아 자발적으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간 후 1508년경 스페인 세르비아를 출발해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 사이의 히스파니올라섬에 도착했다가 1513년에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밀을 심고 수확한 이로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와 합류하여 남미 정복전을 치렀고 금광을 찾아 남캘리포니아까지 갔다 한다.
나는 이런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역사를 들으며 미국에 처음 온 한국인은 누구였을까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1884년 한국에서 갑신정변을 주도했다 실패한 후 미국에 온 서재필 박사. 그는 1890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고 1892년에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의사가 되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만연한 이곳에서, 19세기 말 스무 살에 미국에 와 유색인종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했을지 짐작만 해도 가슴 아린 일이다. 1889년 그가 학부를 졸업하자 그를 후원해온 존 홀렌벡은 그에게 신학을 공부해 조선에 기독교 선교사로 돌아갈 것을 강요했다 한다. 역적으로 조선을 떠나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형편에 있던 그는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어 온갖 굳은 일을 하며 지내야 했다. 1889년의 미국은 어떠했을까?
1889년은 뉴욕타임즈가 ‘전봇대 위의 전쟁’(War on Telephone Poles)이라는 글로 흑인들을 폭행한 후 전봇대에 매달아 죽이는 백인의 만행을 보고한 해다. 1844년에 미국에 첫 전봇대가 설치된 후 미국 전역에서 많은 흑인들이 전봇대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다 한다. 텍사스 와코에서는 17세 흑인 소년 제시 워싱턴이 폭행당하고, 거세당한 후 귀와 손가락이 모두 잘리고 산 채로 전봇대에 매달려 화형을 당했는데, 폭도 중 하나는 불에 탄 그의 사진으로 포스트 카드를 만들어 보냈다. “이게 우리가 어젯밤 만든 바베큐다”는 글귀를 넣어서.
2020년 12월 둘째 주말, 내가 사는 곳인 워싱턴 D.C. 근교는 햇살이 유난히 따스하고 눈부신 날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날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트럼프의 선거 불복을 지지하려 D.C.에 몰려들었다. 저녁 뉴스를 트니 커다란 ‘Black Lives Matter’ 팻말을 칼로 찢어 불에 태우며 환호하는 무장한 백인들이 화면에 가득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에 맞서 파시즘을 반대하는 안티파(Antifa)와 흑인의 생명을 옹호는 BLM 지지자들의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졌고 경찰은 유색인종은 잡아가는 한편 트럼프 지지자들은 보호하는 형국이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순간 몇 해 전 남미에 출장 갔다 돌아올 때 일이 생각났다. 마이애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해서 입국 절차를 마치고 짐을 찾아 환승구로 나가는 길에 백인 경찰이 나를 불러세웠다. 여권심사대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옆으로 짐을 밀고 지나가는데 유독 나를 막아 세우고는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답을 하자 “거기엔 뭐하러 갔냐?”며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투로 특정 단어를 내뱉지는 않았지만 혼자 다니는 동양 여성에 대한 편견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세계은행 출장으로 그곳 중앙은행에서 공적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 답했더니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과 언행이 달라졌다.
올 5월25일 대낮 대로변에 8분46초간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당했을 때 “그는 위인이 아니고 위조지폐를 쓰던 범죄자”라 말하며 백인 경찰을 두둔하는 이들이 있었다. 피부 색깔에 따라 유색인종이면 위인이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만 보호받는 사회는 누가 만든 것인가? 이 나라의 첫 한국계 미국인이 된 서재필 박사는 1893년에 현 조지 워싱턴 대학의 전신인 컬럼비안 대학을 졸업하고 강사가 되기 위해 조교로 수업을 맡았을 때 유색인종 교수를 거부하는 학생들의 반발로 1년 만에 그만두었다 한다. 프라우드 보이즈와 같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총을 들고 길에 나서고 그들을 보호하는 경찰이 버젓이 활개 치는 2020년.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정의하듯 현재 무엇을 기억하는가가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정리해가는 12월, 지금 이 땅의 이만큼의 자유와 인권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이 여정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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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