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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아쉬움 속 樂聖의 생신 맞아’

2020-12-18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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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꺼진 무대…‘환희의 송가’ 없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

‘전세계 아쉬움 속 樂聖의 생신 맞아’
12월 17일은 베토벤이 탄생한 지 250주년을 맞는 날이다. 12월16일에 탄생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베토벤이 세례를 받은 날이 17일이었기에 통상 17일을 베토벤의 생일로 간주한다. COVID 19로 음악회들이 많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2020년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떠들썩한 베토벤의 교향곡 연주회가 열릴 뻔한 한 해였다. 특히 12월은 독일을 비롯해 전통적으로 전 세계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합창)을 연주하며 송년을 기념하는 달이기도 하다. 흔히 ‘환희의 송가’라고도 불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클래식 방송 투표에서 1위를 놓친 적이 거의 없는 고전음악의 아이콘과 같은 작품이기도 했다. 물론 베토벤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 이름을 빼고는 클래식 음악을 말할 수 없는 정도로 위대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특히 교향곡 9번과 같은 정신세계의 이상을 펼쳐 보인 작품은 인류 역사상에서도 드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연말에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처음 연주된 것은 1차대전 종전 직후인 1918년 12월 31일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콘서트가 그 시작이라고 한다. 밤 11시에 시작하여 자정 정각에 4악장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도록 기획했는데 이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은 일본 등으로 전해지면서 송년 연주회로 굳어졌고 한국에서도 2008년 12월에 정명훈 지휘자가 무대에 올리면서 송년 행사로 굳어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베이지역에서 펼쳐지기로 했던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주요 연주회들이 COVID 19로 모두 취소되는 안타까움을 겪었다. 특히 한인 지휘자 김은선씨가 지휘봉을 들 예정이었던 9월 ‘피델리오’ 공연이 전격 취소되어 한인 음악 팬들의 아쉬움을 샀으며 이외에도 바이올린의 여제 안나 소피무터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소프라노 Sasha Cooke의 독창회, Igor Levit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회 등도 모두 취소되는 불행을 겪었다.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열망한다’ 영국의 수필가이자 비평가 월터 페이터가 한 말이다. 이말은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감동이 모습을 표현한 말이지만 베토벤 이후 음악이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말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철학자 니체는 ‘음악이 없는 삶은 실수”라고 했다. 베토벤이라는 인물은 비록 음악가로서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지만 인류에게 음악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큰 실수인가를 그 누구보다도 확인시켜 주었던 위대한 음악가였다. 19세기 이전까지 음악은 칸타타, 오페라, 오라토리와 같이 가사(詩)의 도움을 받는 시녀역할에 불과했다. 이때 순수 기악곡을 통해 음악에 사상을 불어 넣는데 성공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다.

음악에서의 사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혼돈에서의 해방, 절망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오직 언어와 시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사상이었지만 음악은 詩가 미치지 못하는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내적인 극복… 페이소스(비애) 등을 통해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감동을 선사했다.

베토벤의 음악은 낭만파, 후기 낭만파 등으로 이어지며 19세기 유럽 예술에 더욱 깊숙히 감화의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데 특히 문호 로망 롤랑, 시인 릴케, 철학자 쇼펜하우워 등은 “뭇 영혼들을 미역 감게하는, 영혼의 소리를 듣게 하기 위하여 신이 일부러 귀를 막은 자”라고 칭송했다.

불꺼진 무대… 2020년 한 해 만큼은 전세계적으로 ‘환희의 송가’없는 송년의 밤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베토벤은 ‘운명은 사람에게 인내할 용기를 주었다’고 했다. ‘환희의 송가’ 없는 송년의 밤… 그러나 올해야말로 오히려 그동안 듣지 않았던 ‘환희의 송가’를 들을 적합한 때가 아닐까? 각자 내면에 울리는 베토벤의 탄생… ‘환희의 송가’가 울리는 2020의 연말을 기대해 본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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