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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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만 남아

2020-12-12 (토)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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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밖에 안 남았나, 반이나 남았나? 1849년 러시안 리버에서 사금이 대량 발견돼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를 촉발시켰던 지역인 주도 새크라멘토까지 약 3시간 거리의 비즈니스 출장길이다. 차에 시동을 걸고 나는 대시보드의 개스 게이지를 바라보았다. 지난 10월 부업으로 업종을 추가해 파머스 보험 에이전시 오너가 되면서 받은 8천불의 사이닝 보너스로 새로 산 차라 탈 때 마다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작년 초 전혀 예상치 못한 귀인이 전화를 걸어와 3건의 의미 있는 딜을 잭팟 처럼 성사시킬 수 있었던 새크라멘토는 어느덧 내게 행운의 도시 같은 느낌으로 다가 온다. 중간 정도 지점일 바카빌의 코스코 개스 스테이션을 찾아내 입력하고 네비가 안내하는 라우트를 보니 반대쪽인 플레젠튼 방향으로 동진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프리웨이 101을 따라 북상해 샌프란 공항을 지나 도심을 거쳐 베이 브리지를 건너 버클리를 지나라고 한다.

새크라멘토는 과연 이번의 방문에서도 아름다운 성과를 빚어줄 것인가?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사랑, 이 가슴에 슬픔만 남아…’ 20여곡 노래 모음을 듣다 보면 어느새 나를 새크라멘토에 데려다 주는 유익종의 잔잔한 유튜브 가요를 틀고 오디오의 볼륨을 조금씩 올리며 따라 불러본다.

약 30분을 달려 SFO 샌프란 공항 인근의 대학 13년 선배인 남선배님의 사무실이 있던 밀브레를 지날 무렵이다. 나는 무언가 상실감에 울적해 졌다. 이제 20년차로 들어가는 나의 샌프란시스코 베이 이민 기간 중 특히 최근 지난 7~8년간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인자한 큰형님 같았던 남 선배님이 더 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분은 훌륭한 멘토요, 친구이자 내 인생 최고의 팬이었던 것이다.


선배님이 내게 해 주신 간증에 따르면 약 40년전 형수님 가족의 초청이민으로 오기 싫은(?) 미국에 도착했을 무렵만 해도 좌충우돌 지표 없는 삶을 사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 과음으로 엄청난 각혈을 하며 사경을 헤매다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였고 이후 독실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했다. 미국인 회사에서 일하시다 독립해 30여년간 해외 주둔 미군기지에 대한 관급 전기자재 공급사업을 탄탄한 궤도로 올려놓는 동안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밤 10시30분까지 사무실에 남아 열심히 일하는 한편 주변 사람들 한명 한명을 위해 정성으로 기도하시던 분이다.

사랑이 가득 담긴 따뜻한 카톡 메시지를 보내며 댓글로 격려해 주었고, 회사 사장이라는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 어느 누구든 샌프란 공항에 라이드가 필요한 분이 있으면 손수 운전해 주시던 정말 가슴이 따뜻한 분이었다. 라이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일인 줄 모른다 하실 때에는 성인이란 바로 이런 분을 두고 말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항상 서늘해 지곤 했었던 것이다. 그러던 선배님은 지난 5월말 불의의 언덕길 자전거 낙마 사고로 너무도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신 것이었다.

생애 마지막 5년간을 남 선배님은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위험한 거리로 악명높은 텐더로인 지역에서 홈리스들을 돕는 사역을 하는 한인 교회의 일원으로 주말마다 무료 급식 봉사를 해 왔었다. 오랜 길거리 생활로 악취에 찌든 그들을 전혀 꺼려하지 않고 친구삼아 다정히 허그하고 손 내밀어 교회로 데려와 사랑을 나누는 일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런 사정을 아는 몇몇 동문들이 선배야 말로 ‘달라이라마’ 와 같은 반열의 살아있는 최고의 성인이라고 웃으며 치켜 세워드리면, ‘교회 장로에게 달라이라마라 하면 우쩌노?’ 하시며 티없는 아이 처럼 파안대소를 하시곤 하였었다.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지난 주말의 오후, 바닷가에서 물새들을 완상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돌아와 차에서 막 내릴 때 였다. 낯선 번호로 전화 벨이 울리기에 주저하며 받아 보니 왠 젊은 여인이다. 얼마전 UC 어바인의 도시개발학과 종신 교수로 임용된 선배님의 따님 슬기씨였다. “아빠의 회사는 이어받을 사람이 없어서 금년 말로 회사를 문을 닫기로 했거든요. 사무실에 와서 유품을 정리 하던 중에 아빠가 선생님의 한국일보 주말 에세이를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으시고 모아 놓은 스크랩 북을 발견해서 알려 드릴려구요. 아빠는 구름위에서 웃으며 내려다 보실 거에요”

이 세상이 쓸쓸할 때 전화 걸거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성공한 삶을 살아 온 것이다. 어쩌다 사무실을 찾아가면 항상 사랑하는 막내동생을 바라보듯 인자한 눈길로 이야기를 들어 주시고 맛난 디너를 꼭 사 주시던 남 선배님이 더 이상 이세상 분이 아니란 사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그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고통스럽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처음 느껴보는 억울한 박탈감이다. 무심한 하나님이 내게 왜 그러셨을까…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온 세상이 만신창이가 된 채 애환의 2020년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새해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화롯불 같은 존재가 되어 생전의 선배님에게 진 빚을 갚고 싶다.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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