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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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총량 불변의 법칙

2020-12-10 (목) 케이 김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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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한 가지. 내 몸에 가장 가까이 달라붙어있는 건? 남편? 와이프? 연인? 아기?

아니다. ‘마음’이다. 몸과 마음은 한 통속이다. 마음의 오락가락은 몸이 제일 먼저 안다. 불타는 연정의 터져 오름은 세포 하나하나를 살아서 꿈틀거리게 하고, 이별의 찢어져 내림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살갗조차 아프게 한다. 몸은 마음을 알고 마음은 몸을 안다.

의도 없는 행동은 없다. 몸의 모든 움직임에는 목적이 있다. 눈만 뜨면 머리가 아픕니다. 허리가 아픕니다. MRI 찍어도 이상이 없다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죠? 문제는 다른데 있었는지 모른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숨이 갑갑하던 어느 날, 무담보 대출이 뚫리면서 살 길이 트였다는 소식을 듣는데 더 이상 아프지가 않다.


우리는 누구나 고민한다. 고민 사이즈의 크고 작음은 남이 아니라 내 마음이 정한다. 수시로 불쑥불쑥 신혼집에 드나들며 장가간 아들 속옷을 정갈하게 개어놓는 시어머니 때문에 못살겠다는 며느리, 밤샘 야근으로 제출한 기획안을 자기 아이디어인 양 가로채다가 상사에게 보고하는 부장 때문에 사표 던지고 싶은 말단 사원, 평소엔 내성적이고 조용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때리고 부수는 남편 때문에 그만 살고 싶은 아내,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고민한다. “뭔 소리? 난 고민이 하나두 없는데?” 라는 사람은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민할지 모른다.

그래서 ‘고민한다, 고로 존재한다’ 역시 성립한다. 사람마다 살아있는 동안 감당해야할 고민의 총량은 대충 비슷하다. 소위 ‘질량 불변의 법칙’은 3백년 전 세느강변을 걸어 다녔을 천재 과학자 라봐지에의 대발견이 아닌가. 공기 중 산소로 종이를 태우면, 그로 인해 생긴 재와 가스의 무게는 원래의 종이와 산소의 무게와 같다. 중학교 때 배운 얘기다. 라봐지에는 그 시절 정치대변혁 때 단두대에 섰지만 이론만은 살아남아 우리 앞에 놓인 고민 총량을 저울질해보게 한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떠올려보자. FEDEX 화물기 조난으로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탐 행크스의 고민은 온통 ‘살아남기’이다. 4년 후 극적으로 구조되어 사회로 돌아왔으나 그는 눈앞에 펼쳐진 다른 갈등 앞에 마주선다. ‘살아남기’의 무게가 100이었다면, 이후에 만나는 온갖 고민의 무게를 다 합쳤을 때 여전히 100. 고민 질량 불변이다.

정신건강분야에서 가장 자주 다루게 되는 사례는 불안과 우울이다. 우울장애는 평생 25%의 사람들이 한번 겪고 간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20여명이 한자리에 만나 가족 파티를 가졌었다면, 내 앞에서 하하깔깔 웃었던 가족, 친척 중 5명은 속으로 우울증에 괴로웠을 수도 있다. 불안장애는 여성 12%, 남성 7%가 평생 한번 경험한다. 불안한데 우울까지 한 경우(공병률)는 전체 불안장애 환자의 55%나 된다. 왜 우울한 걸까? 왜 불안한 걸까?

최근 심리학의 흐름은 불안을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력 부족’(Intolerance of Uncertainty)으로 해석한다. 코로나는 어떻게 될까? 몇 달째 수입이 끊겼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불확실한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은 누구나 겪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지나치게 못 견딘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모호한 정보가 주어지면, 이를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느니 차라리 나쁜 확실함을 받아들이는 게 수월하다.

불안, 걱정, 고민은 일생 동안 우리 몸에 딱 붙어서 ‘질량 불변’을 지킨다. 그러니 어차피 고민을 하려거든 쓸 데 있는 고민을 하는 게 건강에 좋다. 마음 씩씩이 곧 몸 튼튼이기 때문이다.

<케이 김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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