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하면 미국에 두 명의 대통령이 있을 뻔했다. 다행히 트럼프가 오는 14일 선거인단 투표에서 바이든이 승리하면 백악관을 떠나겠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고 기다려볼 일이다.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1963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뒤 첫 번째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그 서슬 퍼런 시절인데도 윤보선 대통령이 고작 15만6,000표, 1.5%라는 근소한 표차로 패배하자 자기가 ‘정신적 대통령’이라며 한동안 승복을 못했다.
그 이후 한때 한국에서는 ‘정신적’이란 표현이 유행했었다. 정신적이란 말은 육체적이란 말과 대비시키면 매우 고상한 단어다. 그러나 중세기에 플라토닉 러브를 정신적인 사랑이라고 치켜세웠던 배경에는 금욕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당시의 허위와 이중성이 스며있기도 했었다. 다인종사회인 미국에서는 때로 흑인이면서 성형과 분장으로 ‘정신적 백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5년 전 흑인운동가인 레이첼 돌레잘이나 최근의 제시카 크루그 교수처럼 백인이면서 ‘정신적 흑인‘으로 살아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을 제자리로 되돌려놓겠다고 한 약속가운데 국내적으로는 인종문제와 이민자문제가 있다. 트럼프의 지독한 반 이민정책은 지금도 계속돼 지난 1일부터는 23개 저개발국가 입국자들이 미국에 들어올 때면 비자 보증금이라고 1만5,000달러를 납부하게 돼있다. 다행히 한국은 그 대상에 포함돼있지는 않지만 이민자인 우리 한국계 미국인은 트럼프 정부가 저질러놓은 부당한 이민정책이 얼마나 개선될 것인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이번 연방하원 선거에 한국계 의원이 4명이나 선출된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다. 소속정당의 뒷받침과 개개인의 노력이 컸겠지만 못지않게 한국의 위상이 커진 것이 큰 힘이 된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선 미국 정치인으로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의정활동을 펴야한다. 그러면서 만일 한인사회나 한국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때는 주류사회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은 한반도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의 자손이고 그 피가 몸에 흐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에 반 이민물결이 불기 시작했던 지난 94년, 우리 한인사회는 불법체류자의 사회보장 혜택을 차단하는 ‘주민발의안 187’을 저지하기 위해 힘을 모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한인으로서는 처음 연방하원에 진출한 김창준 의원이 협력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자기가 속한 공화당의 당론만 쫓아 오히려 합법이민자의 웰페어 개정안 통과마저 앞장서는 바람에 동포사회에 큰 배신감을 안겨주었었다. 까마귀가 흰 페인트칠을 한다고 비둘기가 되지는 않는다. 새로 의회에 진출한 한국계 의원들은 김창준 의원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 확산세가 사상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교회의 문을 닫고 떠나는 젊은 목사들의 딱한 사연이 있는가하면 아집과 맹신으로 사회로부터 빈축을 사는 목사들도 있다. 예수라면, 미국에서만 하루에 3,000명이나 죽어가는 이 끔찍한 상황에서 이웃의 생명보다 현장예배가 더 중요하다며 방역당국과 다투고 있었을까? 예수라면, 거의 모든 자영업자들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크리스마스 때면 병상도 없을 것이라는 이 비상한 시국에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섬김과 돌봄 이외에 또 어떤 일에 관심을 둘 수 있을까?
세월이 한 구비를 돌아간다. 60년대 신동엽 선생의 시에 ‘껍데기는 가라’는 시가 있었는데 오늘은 ‘가짜는 가라’고 외치고 싶다. 이 해도 가고 지긋지긋한 전염병도 가고 그 전염병에 기생해 우리를 힘들게 했던 모든 허위와 가식과 기만들?가짜 대통령과 가짜 코로나 정보, 가짜 뉴스 생산자, 가짜 주류사회 사람들, 가짜 예수의 제자, 이들 모든 가짜들과 이별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별은 서러우나 그런 이별은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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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