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다림이 현실과 맞닿을 때

2020-12-01 (화)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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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넣고, 얘는 뺄까?” 머리가 지근지근 하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가 초청 명부를 만들며 고민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컴퓨터 줌(Zoom)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한 순간 남의 얼굴처럼 비쳐지다 곧 본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일종의 심리적 해리현상으로 불안하다는 뇌의 신호다. 검사결과를 듣기위해 의사와의 화상통화를 기다리는 중이다.

기다림과 고르기(선택) 그 자체가 인생살이다. 우린 이 두 가지를 반복하며 삶의 마지막까지 동행한다. 기다림은 때로 성취 부 명예 소망 등을 안겨줘 즐거움 기쁨 행복감을 주지만 대부분 어려운 상황에 부딪쳐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행여 닥쳐올지 모르는 예기치 않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의심과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살아가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한편 우리 뇌는 부정적 감정과 상황을 싫어한다. 될 수 있으면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결과적으로 인류는 밖으로 나타난 감정표현과 안에서 일어나는 뇌 변화에 맞춰 진화돼 왔다.

현실과 현재는 존재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생각에 오류가 생긴다. 오직 오감을 통해 얻어지는 현실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환각지 증상(Phantom limb symptom)처럼 통증이 있어도 실체는 없다. 과학적으로 보면 너무나 짧은 한 찰나의 시 공간이 현실이고 현재다. 현실, 현재라 생각하는 순간 벌써 지나가 버리니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있는 것은 확실하다.

철학자는 두 가지 현실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눈으로 보는 어느 한 순간인 외적 물리적 현실, 추상적인 생각과 느낌으로 경험하는 내적 심리적 현실이다.

살아가며 종종 기다림이 현실과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때가 온다. 올 대선 TV 논쟁을 보던 중 조 바이든 후보가 내 어릴 적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중학교 1학년 영어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꼭 한 학생을 호명하여 교과서를 읽게 했다. 당시 말을 좀 더듬던 나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내 이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런데 책 첫 문장의 단어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입문이 막혔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눈앞이 아른거렸다. 홍당무가 된 얼굴로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현실은 기다림을 잉태한다. 기다림은 보통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태어난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감정이 두려움이다. 정신과의사를 하며 두려움과 불안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제일 많이 만났다. 두려움의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증상들은 비슷했다. 퇴행성 뇌 조직 손상에 의한 인지기능 장애를 제외한 다른 정신병은 세월이 흐르며 발병과 증세의 정도가 점점 적어진다. 그런데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오는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는 오히려 증가 추세를 보인다

나이가 들며 왜 불안과 우울이 많아질까. 세상과 인간이 너무 과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 연결시대와 더불어 100세 시대로 인해 얼굴 맞대거나 인터넷 공간에서 서로 대화하며 살아야 할 시간이 많아졌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소통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자연히 타인과 비교가 되고 인간관계에서 갈등 경쟁 시기 질투 등 정서적 문제들이 두려움, 불안으로 노출되어 고통을 준다.

기다림이 받아들이기 벅찬 현실과 만날 때 세 가지의 감정패턴과 행동패턴을 보인다. 감정유형은 첫째, 상황을 적으로 인식하고 투쟁과 복수심. 둘째,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이 아니라는 무관심, 무기력. 셋째, 실제 상황 속에 자신을 집어넣고 어떻게든 빠져나오려는 유연감과 적극성이다. 행동유형은 싸우거나, 피하거나 혹은 마비된 채 얼어붙어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느낀 감정과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에 맞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을 때는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그런 일을 당한 후 나는 말더듬을 미운 적이 아니라 가까운 동무 삼아 지내기로 했다.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꼿꼿이 머리 들고 다니는 단단한 사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큰 약점을 무기 삼아 나의 열등감을 이겨보려고 한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생각을 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생각은 내 말더듬을 점점 고쳐주었다.

지금도 말을 빨리하려고 하면 조금 더듬지만 가장으로서, 말로 먹고 사는 정신과 의사로서 불편 없이 살고 있다. 나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내기 싫지만 혹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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