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미줄과 의사

2020-11-27 (금) 최청원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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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신규 코로나 감염자가 하루 5,000명 선을 넘나든다. 앞으로 더 많이 증가하리라는 전망이다.

주정부로부터 그제부터 다시 코로나 지침으로 필수업무 요원 외에게는 활동자제령이 내렸다.

오피스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나훈아의 ‘테스형’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세상이 왜이래? 그리고 세월이 왜 또 이렇지?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가사다.

8개월 전에도 똑같은 코로나 지침이었다. “연로한 사람은 외출을 삼가고, 사람 간의 간격은 6피트 이상,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는 세가지 지침을 어쩔 수 없이 모두 못 지키게 되는 나같은 나이든 내과 의사 직업이란 무엇인가 상념에 잠긴다.

아픈 환자는 다 오라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우리 교포 노약자분들은 화상통화나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하다), 1피트도 안 되게 가까이 청진기를 가슴에 대고 진찰하는 직분이다.

“쫓지 않아도 가는게 시간이고, 8자는 뒤집어도 팔자”라는 ‘테스형’의 노랫말 같이 그런 의사의 ‘팔자’ 아니, 정해진 직분이라 다짐하며 한번도 문 닫지 않고 매일 기다리며 지낸 8개월이다. 다시 내린 지침에 기다림의 한계에 도달하여 지쳐서 그동안 씩씩하던 용기는 희석되고 가슴속에 잠자던 두려움이 흔들어댄다.

그러나 처음과는 다르다. 희망이 보인다. 예방주사가 내년 봄이나 늦으면 여름 전까지는 모든 대중에게 접종되어 코로나가 종료가 될 수 있단다. 더욱 화이자 회사와 모더나 회사의 예방주사가 각기 2 종류나 우리 곁에 와있다.

희망 속에 살 때 우리의 삶은 보석처럼 빛날 수 있다.그리고 희망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오피스 스태프들과 같이 공기청정기를 재차 점검하며, 자외선소독기로 오피스 공간을 소독도 해가며 안면 보호대 뒤 안면마스크는 꽉 조이고 청진기 앞에 과감히 서있을 수 있는 용기와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주는 ‘희망’이다.

힘들 때 우는건 삼류, 힘들 때 참는건 이류, 힘들 때 웃는건 일류라는 말이 있듯이 웃고 지내리라 다짐해본다. 나뭇가지는 폭풍에 부려져도 가늘고 나약하여 잘 흔들리는 거미줄은 태풍에도 끊어지지 않고 잘 버티어낸다는 말이 있다. 조그만 오피스에서 근무해온 조그마한 내과 의사의 생태가 어쩌면 거미줄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코로나 환란 속에도 거미줄 같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바라고 믿으면서 오늘도 오피스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다.

<최청원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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