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과 이별 중입니다
2020-11-14 (토)
손화영/가야금 연주자
산조 가야금 하나가 많이 아프다. 조금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소리로 ‘나 아직 살아 있소’ 한다. 아픈 내색은 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 거뭇거뭇해졌다.
필시 주인이 습도 관리를 잘하지 못해 나이 든 몸에 병이 들었을 것이다. 매일 보면서도 조금씩 달라진 악기를 눈치 채지 못했다. 언젠가는 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지금은 그저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다. 필시 그동안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가야금은 여느 서양악기와는 달리 수명이 짧다. 좋은 가야금을 만들기 위해선 수십 년 이상 된 질 좋은 나무를 자연 상태 그대로 건조해 만들지만, 일단 악기로 탄생하면 청아한 소리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둔탁해져 자신이 탄생하기 전 자연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내던 시간만큼은 맑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따라서 가야금 연주자들은 여러 대의 악기가 필요한데, 한때는 연주용이었던 좋은 악기가 세월이 가면 연습용 악기가 되어 그 자리를 내어주곤 한다.
나와 30년의 세월을 함께한 이 세 번째 악기는 가장 화려했고 여전히 도도하다. 악기장이 안족에 처음으로 금박을 입히던 때에 태어난 이 악기는 배에도, 비행기에도 실려 청중과 함께 기뻐하고 울었으며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소리를 뿜어냈다.
내 철없던 10대를 성장하게 해주었고 까칠했던 20대를 가장 빛나게 해주었다. ‘싸랭’ 하고 진양조 첫 가락이 울릴 때면 숨이 멎을 듯한 청아한 소리로 무대에서 빛나던 악기, 수많은 대회에서 나의 긴장을 흥분으로 바꾸어주던 악기, 5년 후 새로 자리한 연주용 악기에 한발 뒤로 물러나고서도 오래도록 든든히 무대를 지키던 악기였다.
기억 속의 예쁜 노리개를 지녔던 내 여덟 살의 첫 악기부터 열 살의 데뷔 무대를 장식한 이제는 빛바랜 푸른 부들의 악기 등 작은 방 한쪽에 줄줄이 늘어선 악기들을 보자니 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무대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그리고 이곳 먼 이국땅에서도 내 모든 기억과 순간을 함께 했다.
자그마한 손으로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악기를 부여잡고 다니던 어린 시절처럼 나이 든 지금의 나와 앞으로 다가올 더 성숙해질 시간을 조금 더 힘내어 함께 하길 바라며 내 아픈 손을 덤덤히 어루만지는 이 악기와 오늘 하루의 연습을 마무리한다.
<
손화영/가야금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