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새 영화 ‘애모나이트’ (Ammonite) ★★★ (5점 만점)
▶ 내성적 고생물학자-유부녀, 감정적 교류와 노골적 정사…윈슬렛의 내면 연기 뛰어나
메리(왼쪽)와 샬롯이 해변을 걸으며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19세기 영국의 도셋 지역 해변 마을에 살았던 독학을 한 여자 고생물학자 메리 애닝의 삶에 허구를 섞어 만든 엄격한 드라마로 제목은 메리가 전문적으로 연구한 선사시대의 조개류의 갑각류 해저 생물을 뜻한다.
메리는 이 애모나이트의 화석을 발굴해 연구한 학자이지만 당시만 해도 모든 것이 남자 위주의 세상이어서 그의 업적도 남자 학자들의 것처럼 도적질을 당했다.
영화는 나이 먹은 어머니(젬마 존스)와 함께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애모나이트 화석을 관광객들에게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중년의 메리(케이트 윈슬렛)의 척박한 삶과 그가 만난 자신과 신분과 배경과 성격이 다른 젊은 여자 샬롯 머치슨(셔사 로난)과의 뜨거운 사랑을 일체의 꾸밈없이 내핍하도록 검소하게 그리고 있다.
바람이 불고 잔뜩 찌푸린 황량한 해변의 모습(촬영이 좋다)처럼 춥고 어둡고 혹독하도록 군더더기 없는 영화인데 영화의 후반부터 전개되는 메리와 샬롯의 급작스런 사랑의 관계가 전연 설득력이 없어 당황하게 된다. 작년에 나온 ‘불타는 여인의 초상화’를 연상케 하나 그 영화의 섬세한 감정 묘사와 절제된 두 여인의 사랑 묘사에 많이 뒤진다.
해변을 다니면서 애모나이트를 채취하는 메리는 내성적이요 마음 문을 걸어 잠근 여자로 얼굴에서 일체의 표정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메리는 자기 신분 때문에 박물관에 자기가 채취한 화석들이 전시되는 업적(그러나 화석을 사온 남자의 이름으로 소개된다)을 지녔는데도 제대로 인정을 못 받아 당시 사회의 계급차이를 깊이 의식하고 있다. 메리의 손은 진흙 속에서 애모나이트의 화석이 박힌 돌들을 캐내느라 거칠어졌고 의상도 남루할 정도이고 머리도 뒤로 매고 얼굴에 화장도 하지 않아 마치 버려진 여인의 분위기를 낸다.
어느 날 메리에게 부유한 상류층의 로데릭 머치슨(제임스 맥아들)이 젊은 아내 샬롯을 데리고 방문한다. 애모나이트에 관심이 깊은 로데릭은 메리에게 후한 수업료를 지불하고 메리를 따라다니면서 애모나이트 화석 발굴에 관해 배운다. 이어 로데릭은 사업차 메리에게 샬롯을 돌봐달라고 맡기고 떠난다. 그런데 샬롯은 최근에 아기를 유산해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의 샬롯은 밝고 영리하고 사업에 눈이 밝은 여자로 사랑과 정열이 결핍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메리와 샬롯이 한 지붕 아래서 살게 되면서 성격을 비롯해 모든 것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 두 사람 간에 서서히 감정이 연결되고 이 감정은 뜨겁게 불타는 사랑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둘의 감정적 정열적 관계의 설정이 너무 급작스러워 실감이 나지 않는 점. 설득력이 부족한데 따라서 두 사람의 정열적 성애(나체 정사 장면이 굉장히 노골적이다)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에서 열기가 느껴지지 않고 거리감이 느껴진다.
메리는 이 관계를 통해 닫혔던 가슴이 열리면서 얼굴도 밝아지고 생기를 찾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자유와 위안을 찾지만 샬롯은 메리를 두고 떠난다. 영화에서 또 다른 엉뚱한 것은 메리의 전 애인(피오나 쇼)이 영화 중간에 불쑥 나오는 것. 전체 맥락과 전연 어울리지 않는다. 볼만한 것은 연기파 윈슬렛의 연기. 내면 깊이 안으로 짓누르는 억제된 연기가 훌륭하다. 이에 비해 로난의 연기는 무덤덤한데 이 것은 그의 역이 메리의 그 것에 비해 미약한 탓이다. 프랜시스 리 감독(각본 겸). 등급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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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