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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클래식] Being There

2020-11-13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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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를 보니, 지난 해 제작됐던 007 영화가 COVID 19 때문에 개봉을 미뤄오다가 드디어는 인터넷 매체에 팔리게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내년 봄쯤 개봉을 앞두고 가격을 저울질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되면 사상 처음으로 007 영화가 영화관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개봉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들은 이번 팬데믹 이후 가장 타격을 받게 될 사업 중의 하나로 영화 산업을 꼽고 있다. 그동안 TV 등에 빼앗겨 오던 영화 시장이 이제 팬데믹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직격탄을 맞게될 모양이다. 집에서 TV를 통해 개봉되는 007의 맛은 어떨까? 스크린 문화의 두 형제 TV와 영화관이 이번 팬데믹으로 전혀 다른 운명을 맞고 있다. 어쩌면 본격적인 TV시대… TV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앞서고 있다.

‘Being There’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챈스 가드너 그곳에 가다’ 혹근 ‘정원사 챈스의 외출’ 등의 제목으로 번역된 작품으로, 코진스키의 중편소설인데 1979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가 수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선 별로 알져지지 않았지만 당시 골든 그로브 남우 주연상, 아카데미 조연상,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 등을 휩쓸었다. 작품은 간결한 문체, 대화 등으로 세태를 풍자하고 있는데 특히 TV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크게 주목을 끌었었다. 코진스키(Jerzy Kozinsky, 1933-1991)는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어린 시절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작가가 됐으며 대표작 ‘Being There’은 1970년에 발표됐지만 후에 영화화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핑크 팬더의 피터 샐러스,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의 셜리 맥클레인이 열연을 펼쳤다.
주인공 챈스는 정원사이며 지적장애자다. 고아로 태어난 그는 한 자선가에 의해 길러지게 되는데 장애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집주인은 그를 문 밖에 나서지 못하게 했고 챈스는 오직 먹는 것과 TV 보는 것 그리고 정원 가꾸는 일밖에 아는 것이 없다. 어느덧 중년이 된 챈스는 집주인이 죽게 되자 퇴거 명령을 받고 바깥 세상에 나가 온갖 오해에 부딪히게 되는데 특히 재계의 거물 랜드의 리무진에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이야기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집주인이 물려준 수제 양복, 번듯한 외모, 화려한 슈트케이스 그리고 TV를 통해 익히 단조로운 말투, 지적 장애자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 의젓한 행동 등이 오해를 사면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데 당시 경제 상황과 맞물린 챈스의 정원(庭園)에 대한 견해가 TV에 소개되면서 대박을 터트린다는 내용.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한다. 복잡한 예를 들을 필요도 없이 얼마 전 끝난 미국 대선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다. 위스콘신 주에서 바이든 후보가 2만표차이로 승리했는데 대선 승리에 크게 일조한 州로 주목을 받았다. 아이러니는 4년 전에 이곳에서 트럼프 후보가 정반대 표차인 2만표 차이로 승리한 주였다는 것이다. 위스콘신 주만큼 성향이 양분된 주도 없다는 것인데 이곳의 금기는 절대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란다. 정치 얘기를 입밖에 내는 순간 친구도 친척도 원수로 변해 버리고 말기 때문인데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위스콘신인들이 쌓아온 지혜였다. 정치는 왜 화합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위스콘신주든 펜실바니아주든 정당한 투표로 트럼프가 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부정선거가 개입했거나 트럼프가 당연히 이겼을 것으로 믿고 있다. 특히 요즘은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강한데,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요즘은 오히려 언론이 먼저 거짓말 뉴스에 앞장 서고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정치적인 이익, 아니면 성향과 파벌에 따라서 온갖 선동과 거짓말들을 서슴치 않는다. TV는 TV대로, 신문은 신문대로 선동과 가짜 뉴스의 끝판왕이다.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으면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


바보와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한다. 바보는 그 무지로 인하여, 천재는 그 초월적인 힘의 순수한 요소들이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 갭은 건너 뛸 수도, 교차될 수도 없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영화 ‘Being There’은 스크린 미디어(TV)가 그 갭을 메꾸는 마술이 될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현대 사회에서 TV 란 천재를 바보로 만들고 바보를 천재로 만드는 위력을 보여준다. TV의 위력은 선거 등에서도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Being There’ 은 TV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허망한 것인가를, 또 그 TV 문화에 메달려 사는 현대인의 아이러니를 투영하고 있다.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대통령은 휠체어에 의지했던 정치가였으면서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한 명으로 남았다. 이미지가 훌륭하다고 모두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선택한 대통령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루즈벨트같은 지도자적 자질을 가졌다고 자신 할 수 있을까? 모두 아버지의 후광, 아니면 운동권 이미지… 거짓말을 일삼고도 후진적 정치환경에 힘입어 대통령이 된 사람들 뿐이다. 우리의 모습은 진정한 나일까 아니면 이미지로 투영된 가상의 나일 뿐일까? 전 세계가 주목하던 미국의 선거가 끝났다. 그러나 분열과 상처는 남았다. 위스콘신州 처럼 정치 얘기는 하지 않으려한다. 다만 자신들이 보고싶은 면만 본다는 이유 때문에 지적 장애자가 내각 후보에 오르는, 코미디 ‘Being There’ 이 미국사회의 실루엣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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